최근 1년간 1%포인트가량 오른 은행 신용대출 금리가 앞으로는 더 빠른 속도로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 강화 방침에 맞춰 은행들이 금리 인상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일 5대 금융지주 회장들을 만나 “금리를 은행 자율로 맡기겠다”면서도 “가계부채 위험 관리에 전력을 다해달라”고 요구했다. 은행들이 고객을 유치하려면 금리 인하 경쟁을 해야 하고, 반대로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누르려면 가격(금리)을 올려야 한다. 고 위원장은 은행에 대해 모순(矛盾)된 주문을 한 것이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금리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금융사는 없을 것”이라며 “은행이 자체적으로 금리를 올려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해달라는 것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은행 신용대출 금리 추이

◇은행들 가산 금리 더 올릴 듯

1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은행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3.89%로 1년 전(2.92%)보다 0.97%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기준금리는 0.50%로 변화가 없었고, 올해 8월 0.75%로 0.25%포인트 올랐다. 8월에도 은행 신용대출 금리 상승세가 이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1년간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는 동안 대출 금리는 4배 더 오른 셈이다.

반면 은행 정기적금 금리는 1년간 1.16%에서 1.14%로 낮아졌다. 저축은행의 경우 평균 신용대출 금리가 작년 7월 16.92%에서 올해 7월 15.23%로 1.69%포인트 낮아졌다. 은행 대출 금리만 청개구리처럼 다른 시장 금리와 다르게 움직인 것이다.

이는 대출 금리에 반영되는 ‘가산 금리’ 때문이다. 대출 금리는 기준 금리와 가산 금리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가산 금리에는 각종 비용과 함께 각 은행의 정책적인 판단이 반영된다. 예컨대 KB국민은행은 신용등급 1~2등급의 고신용자들에게 신용대출을 해줄 때 가산 금리를 작년 7월 2.52%로 책정했다. 올해 7월에는 2.93%로 0.4%포인트 이상 올렸다. 신한은행도 고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가산 금리를 1년간 2.43%에서 2.58%로 높였다. 카카오뱅크는 작년 7월 1.8%에서 올해 7월 2.34%로 0.54%포인트 올린 것으로 집계됐다. 기준금리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은행 대출 금리가 치솟은 이유다.

가산 금리는 은행 내부적인 계산 방식이 있지만,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진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금융 당국은 2019년 가산 금리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한 은행들에 무더기로 경고를 주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고승범 위원장이 금리를 언급하면서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은 결국 당분간 가산 금리 인상을 용인해주겠다는 신호로 보인다”고 말했다.

◇적정 대출 금리 수준은 5~6%?

금융권에선 은행 신용대출 금리가 5~6% 수준까지는 올라가야 가계대출 증가세가 어느 정도 진화될 것으로 보고있다. 장민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테일러 준칙을 활용한 적정 기준금리 추정과 정책적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현재 기준금리가 적정 수준보다 1.8%포인트 낮다”고 분석했다.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가 제시한 테일러 준칙은 중앙은행이 적정 인플레이션, 잠재 성장률 등을 고려해 금리 정책을 운용하는 방법이다. 현재 기준금리가 0.75%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준금리가 2.5%까지는 올라가야 한다고 본 것이다. 기준금리가 2.5%였을 때는 2013년 5월부터 2014년 8월까지다. 당시 은행 신용대출 금리는 5~6% 수준이었다.

금융 당국 내에서도 “은행 대출 금리가 5~6% 수준까지는 올라가 줘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금융 당국은 최근 전세 대출 규제를 검토하다 실수요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지적에 “당장 대책을 내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한발 빼기도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올해는 전세 대출, 정책 모기지, 집단 대출이 가계부채 증가액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며 “(집값이 폭등하기 전인) 2014~2015년에 금리가 5~6%였는데 그 정도까지 금리가 올라가면 (가계 대출 급증세는) 해결이 될 문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