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만해도 1000만원이었던 카드론 한도가 갑자기 0원이 됐네요.”

경기도에서 식당을 하는 A씨는 밀린 임차료를 갚기 위해 지난달 카드론을 받으려다 한도가 없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카드사가 대출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쓰지 않는 고객의 카드론 한도를 없앤 것이다.

카드론 조이니 현금서비스로

급전이 필요했던 A씨는 현금서비스로 돈을 빌려 임차료를 냈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현금서비스는 이자가 연 19%로 카드론(연 13%)보다 높은 데다, 만기도 1개월로 최장 36개월인 카드론보다 짧기 때문이다. A씨는 “매달 현금서비스 갚을 생각을 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며 “코로나 때문에 계속 장사가 안돼 연체가 쌓이면 결국 식당 문을 닫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고강도 가계 대출 규제로 카드론이 줄어들면서 이보다 조건이 나쁜 현금서비스 이용액이 급증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5일 금융감독원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7개 카드사(신한·삼성·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카드)의 현금서비스 신규 취급액은 12조6032억원으로, 1분기(12조328억원)보다 4.7%(5704억원) 늘어났다. 증가율은 2015년 4분기(5.9%) 이후 가장 높다. 반면 2분기 카드론 신규 취급액은 13조169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4256억원(-3.2%) 줄었다. 카드론 감소분이 고스란히 현금서비스로 옮겨간 것이다.

◇카드론 조였더니 현금서비스 급증

카드사 대출 상품인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는 한쪽이 늘면 다른 한쪽은 줄어드는 ‘대체 효과’가 자주 발생한다. 올해 1분기에는 카드론 신규 취급액은 13조4425억원으로 1년 만에 12.5%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현금서비스 이용액은 12조32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3% 감소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5월부터 카드론이 급증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금융 당국이 압박을 시작해 6월부터 카드사들이 자체적으로 회원들의 한도를 축소하기 시작했다”며 “회원 입장에선 카드론 이용 한도가 없어지니 현금서비스로 이동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금서비스 평균 금리는 연 18~19%대 수준으로 카드론(연 12~13%)보다도 높다. 정부가 가계 대출을 잡겠다며 카드론을 조였지만, 엉뚱하게 금융 소비자들의 이자 부담만 늘어난 셈이다.

카드사 입장에서도 달가운 상황은 아니다. 현금서비스가 폭증하면 연체액이 급격히 불어나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2018년 4분기 현금서비스 이용액이 전 분기 대비 3.4% 증가한 뒤 2019년 1분기에 연체액은 9.4%(1846억원→2019억원) 늘었다. 이용액이 2.3% 증가했던 2017년 4분기 직후인 2018년 1분기에도 연체액은 10.7%(1585억원→1755억원) 폭증했다.

◇집값 14% 올랐는데 가계 대출 증가율은 5%로?

가계대출 풍선효과는 카드 대출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정부는 지난달 신용대출 한도 축소 등 은행권에 대한 가계 대출 규제를 강화했다. 그러자 당장 돈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앞으로 돈줄이 막힐 것을 우려해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하기 시작했다. 지난 달 1~13일 동안 5대 은행에서 신규 발급된 마통은 1만6062건이었는데, 16~31일엔 2만8083건으로 배 가까이 급증했다.

결국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정부의 막무가내식 대출 규제가 실수요자들의 대출 여건만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 당국은 은행들에 가계 대출 증가율을 5~6%로 맞추라고 주문했지만, 집값 상승률은 10%를 크게 웃돌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8월 말 현재 가계 대출 잔액은 698조8149억원으로, 지난해 12월 말(670조1539억원)과 비교해 올해 들어 4.28%(28조6610억원) 늘었다. 연말까지 4개월 남았지만, 증가율이 올해 초 당국이 시중은행들에 제시한 가계대출 관리 목표(5∼6%)에 이미 바짝 다가섰다. 주담대 증가분 중 실수요 성격이 분명한 전세 자금 대출 증가분(14조7543억원)이 51.5%로 절반을 넘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가 은행 규제를 강화하면 서민들은 조건이 나쁜 2금융권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며 “무차별적인 돈줄 조이기의 부작용을 완화할 실수요자 맞춤형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