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번 주(9~13일)에만 7조원 넘는 한국 주식을 팔아치웠다. 주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 순매도(매도가 매수보다 많은 것) 기록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5거래일 연속 매도세를 이어가면서 13일 원달러 환율이 1165원대를 넘어섰다. 이날 종가 기준 원달러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7.8원 오른 1169.0원에 마감했다. 1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검수하고 있다. /뉴시스

외국인이 주식을 판 돈을 달러로 바꾸면서 13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7.8원 오른 1169원으로, 10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스피도 전날보다 1.16% 내린 3171.29로 마감하며, 7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 5월 28일 이후 11주 만에 3200 밑으로 떨어졌다.

외국인들은 이번 주 5일 연속 매도 공세를 이어가며 코스피 시장에서 총 7조454억원을 순매도했다. 직전 최고치였던 지난 5월 10~14일의 6조3585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5월은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을 처음으로 언급해서 글로벌 긴축이 우려되던 시기다.

최근 외국인의 팔자 행렬도 미국발 긴축 우려에서 시작됐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12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미국 경기 반등을 고려할 때 올해 안에 강력한 통화 완화 정책을 거둬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FT는 “그동안 통화 완화 정책을 지지하는 비둘기파로 알려졌던 데일리 총재가 통화 긴축을 지지하는 매파로 입장을 바꾸면서 조기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미 중앙은행이 이르면 10월부터 테이퍼링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한국은행이 연내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한 상태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로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거품이 꺼지면 실물 위기와 금융 위기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이 닥칠 수 있다”고 말했다.

‘3개의 화살’ 맞은 한국… 원달러 환율 10개월만에 최고

외국인의 주식 ‘셀 코리아(Sell Korea)’는 주식시장뿐 아니라 외환시장의 불안도 가중시키고 있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 판 돈을 달러로 바꿔 나가면서 13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0개월여 만의 최고치인 1169원을 기록했다. 작년 말(1086.3원)에 비해 7.6% 상승한 것이다. 이번 주(9~13일)에만 2.4%(26.9원) 올랐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조기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가능성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달러가 강세이긴 하지만, 최근 원화 가치 하락세는 주요국 통화에 비해 가파르다”고 말했다.

한국 주식을 내다 팔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

◇테이퍼링, 반도체, 낮은 백신 접종률이 3대 악재

미국의 조기 테이퍼링 가능성과 밝지 않은 반도체 전망, 세계 하위권인 우리나라의 코로나 백신 접종률은 외국인 이탈을 가속화시키는 3대 악재로 꼽힌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는 지난 2일 “이르면 10월부터 채권 매입을 줄여나갈 수 있다. 9월에는 (테이퍼링) 계획에 대한 발표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며 내년이 아니라 올해 가을에 테이퍼링이 시작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우리 주력 산업인 반도체 전망이 밝지 않은 것도 문제다. 12~13일 이틀 동안 외국인은 국내 시가총액 1·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식을 각각 4조원, 1조원씩 순매도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500억달러(약 56조원) 규모의 반도체 지원책을 의회에 요구했다는 소식에 한국·대만의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라이벌인 TSMC 비중이 높은 대만 가권지수도 13일 1.4% 하락했다.

델타 변이 확산에 따른 경기 회복 지연 우려도 외국인들의 셀 코리아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한국의 코로나 백신 접종 완료율은 15% 선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낮다. 폴 최 CLSA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백신 접종이 늦어져 경기 회복이 더딘 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당분간 외국인 매도 분위기가 바뀔 이유가 특별히 없다”고 했다.

외국인들이 9~13일에 주간 단위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7조원 넘게 주식을 순매도하면서 코스피 3200선이 무너지고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0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금융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다. 1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코스피 지수와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표시돼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원화 가치 하락, 주요국보다 빨라

외국인의 주식 매도는 전 세계적인 달러 강세 현상과 맞물려 원화 가치 하락(환율 상승) 속도를 부채질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외국인들은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환차손을 우려해 한국 주식을 매각한다. 그런데 외국인이 주식을 팔아치운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원화 약세가 더 가팔라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달러 대비 통화 가치 하락 폭은 한국 원화(-3.4%)가 가장 컸다. 일본 엔(-0.8%)은 물론 최근 기업들에 대한 규제 강화로 경제가 충격을 받고 있는 중국 위안(-1.8%)도 한국보다 하락 폭이 작았다. 유로(2.8%)·영국파운드(1.8%) 등은 오히려 달러보다 가치가 올랐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앞으로 3주 정도는 환율 상승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하나은행은 향후 원·달러 환율이 1170~1185원까지 더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본격 셀코리아는 아니다” 의견도

하지만 외국인 매도가 채권까지 포함한 전체 금융시장이 아니라 주식시장의 일부 업종에만 집중된 현상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셀 코리아로 보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황찬영 맥쿼리증권 대표는 “한국 시장 전체가 아닌 반도체 업종에 국한해서 외국인이 파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최근 반도체 관련 주가가 많이 떨어져 저가 매수세가 들어올 가능성을 감안하면 외국인 매도가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삼성증권은 “대만 TSMC와 한국 삼성전자 등 동아시아 IT 주식들이 약세를 보인 것이지 한국 증시만 타깃이 된 것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외국인들은 주식을 파는 것과는 반대로 한국 채권은 사들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외국인들은 우리 채권을 9조2900억원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했다. 이는 지난 6월(9조3870억원)에 이어 사상 둘째로 큰 규모다. 외국인이 보유한 국내 채권 중 약 67%가 해외 중앙은행과 국부펀드 자금이다. 이들은 중장기 투자를 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한국 채권을 팔고 떠날 가능성은 낮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