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의 잇따른 기업 규제로 중국·홍콩 증시가 급락하면서 이와 관련된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 손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홍콩H지수(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와 연계된 ELS가 문제다.

9일 한국예탁결제원과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지난 1월 발행한 홍콩H지수 ELS 1조4800억원 중 58%인 8620억원어치가 조기 상환에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ELS는 주가지수 등을 기초 자산으로 삼아 이들의 가격을 통상 6개월마다 평가, 조건 만족 시 약속된 수익을 지급하고 상환되는 상품이다. 가령 코스피200 지수가 6개월 후 최초 기준가의 95%, 12개월 후에는 90% 이상이면 수익과 함께 원금을 주고 조기 상환된다.

지난 1월 발행된 홍콩H지수 ELS의 1차 상환 기회가 지난달이었는데, 지수가 급락하면서 상환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中 정부 규제로 ELS도 상환 실패

ELS 기초 자산 중 가장 규모가 큰 지수들은 모두 올 들어 지수가 상승하며 조기 상환 조건을 만족시킨 것으로 분석됐다. 1~7월 중 28조원어치 ELS가 발행돼 가장 규모가 컸던 미국 S&P500지수의 경우 올 들어 계속 지수가 상승해 지난 6일 연초(3700) 대비 20% 오른 4436을 기록했다. 각각 23조원, 14조1500억원어치가 발행돼 그다음으로 컸던 다우, 코스피200 지수도 연초 대비 지수가 각각 16%, 8%씩 올랐다.

반면, 연초 후 홍콩H지수는 14% 하락했다. 특히 지난달 24~26일 중국 정부가 사교육과 배달 업종에 잇따른 강력 규제책을 내놓자 3일(26~28일) 만에 홍콩H지수는 8%나 떨어졌다. 이는 ELS 조기 상환에 그대로 반영됐다. 1월 초 이틀간 발행된 홍콩H지수 ELS는 지난달 초 전량 조기 상환됐지만, 1월 20일부터 발행된 물량 중 지난달에 상환된 비율은 4.5%에 그쳤다.

정인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S&P500, 코스피200 지수 등이 조기 상환 조건을 만족한 가운데 홍콩H지수만 크게 하락하면서 1월 발행 분량 중 상당 부분이 조기 상환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콩H지수는 관련 ELS가 1~7월 중 13조4000억원어치가 발행돼 기초 자산 중 4번째로 규모가 컸다.

◇6년 전 악몽 소환, 8월 이후도 불투명

8월 이후 ELS 조기 상환도 쉽지 않아 보인다. 2월 17일 연중 고점(1만2228.63)을 기록했을 정도로 홍콩H지수가 높아졌던 터라 조기 상환되려면 이 수준 대비 95%를 웃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 연구원은 “2월 평균 홍콩H지수의 95% 수준은 1만1156포인트인데 현재 지수(9300)를 고려하면 8월 중에도 대부분 조기 상환이 어렵다“고 말했다. 2~6월에 발행된 홍콩H지수 ELS 물량은 10조4333억원이나 된다. 정 연구원은 하반기에 1만포인트를 회복하지 못하면 이들 금액 중 대부분이 조기 상환에 실패할 걸로 추정했다.

전문가들은 하반기 중국 증시가 미·중 무역 갈등 부담에, 중국 기업들의 연쇄 부도, 대형 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규제 등 이유로 큰 반등을 보이기 어려울 걸로 내다본다.

이에 따라 2015년 홍콩H지수 사태를 떠올리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당시 중국 정부의 ‘빚투(빚 내서 투자)’ 금지, 중국 경제 둔화 우려로 2015년 5월 1만5000선에 가까웠던 홍콩H지수는 불과 9개월 만인 2016년 2월 7500선까지 곤두박질치며 ELS 원금 손실이 속출했다.

하지만 통상 기준 가격(발행 가격) 대비 60%로 설정된 원금 손실 기준 아래로 떨어지지만 않으면 원금과 수익은 지킬 수 있으므로 기다려 보라는 의견도 있다. 보통 ELS 만기는 2~3년이고, 6개월마다 조기 상환 기준이 기준가 대비 5%포인트씩 낮춰진다. 만기가 2년짜리면 만기 시 기준가 대비 80% 이상, 3년짜리 경우는 70% 이상이면 원금과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셈이다. 만약 투자자가 임의로 중도 상환을 하면 증권사가 책정하는 공정 가액에서 5% 내외인 수수료를 제하고 투자금을 돌려받게 돼 원금이 손실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