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019년 4월 국내 1호 혁신금융서비스(금융 규제 샌드박스)로 선정한 KB국민은행의 알뜰폰 ‘리브엠’ 사업이 2년 만에 ‘중단이냐 사업 계속이냐'의 기로에 섰다. 지난 2년간 알뜰폰 가입자 10만명을 모집한 국민은행은 다음 달 중순까지 금융위원회의 연장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사업을 접어야 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은행은 고유 업무와 연관이 없는 알뜰폰 같은 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은 정부가 이 사업에 대해 금융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샌드박스 특례'를 한시적으로 인정해줬다. 그런데 이 기간이 4월에 끝나서 특례 연장에 대한 재심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일러스트=김성규

금융 규제 샌드박스의 원래 취지는 그동안 규제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했던 혁신 금융 서비스에 대해 한시적으로 예외를 인정해주고, 만일 가능성이 발견되면 관련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관련법이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은행은 재심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국민은행 직원들이 “혁신 금융을 하겠다면서 은행원들에게 폰을 팔게 하냐”고 반발하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금융위가 이 사업에 특례를 적용하면서 “은행 직원들이 과도하게 실적 경쟁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기 때문이다. 재심사 과정에선 단서 조항 이행 여부도 반영된다.

새로운 기술로 참신한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자는 취지에서 시행된 금융 규제 샌드박스가 시행된 지 2년이 지났다. 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37건이 혁신 금융 서비스로 지정됐지만, 아직까지 제도 개선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년간의 특례 적용 기간이 끝나면 접어야 하는 사업이 줄줄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규제 정비 끝난 사업 20%도 안 돼

30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샌드박스에 선정된 사업과 관련된 규제 67개 중 법·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정비가 끝난 규제는 13개(19.4%)에 불과했다. 23개 규제(34.3%)는 정비 방안을 마련 중이지만 나머지 31개(46.3%) 규제는 아예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샌드박스 시행 첫해 선정됐던 사업들의 특례 적용 기한이 다음 달부터 만료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특례 적용 기간은 기본 2년이다. 이후에도 사업을 하기 위해선 재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재심사를 통과하더라도 가능한 사업 기간은 최장 5년 6개월이다.

경쟁 업계에서 소송을 당해 2년 가까이 제대로 사업을 펼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스타트업 빅밸류는 2019년 6월 빅데이터와 AI(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이용해 부동산 시세를 산정하는 서비스로 샌드박스 사업자로 선정됐다. 그런데 작년 5월 감정평가사협회가 ‘유사 감정 행위'라며 검찰에 고발해 수사를 받고 있다. 김진경 빅밸류 대표는 “금융위와 국토부에서 유권해석까지 받아서 샌드박스에 선정됐는데 소송을 당해 당황스럽다”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도 없어 막막하다”고 밝혔다. 금융위 관계자는 “감정평가 업계와 소송이 걸린 것이기 때문에 금융 당국이 막아주거나 개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무늬만 혁신...카피캣도 난무

샌드박스로 선정된 사업 가운데 ‘무늬만 혁신’인 것들도 많다. 우리은행은 2019년 5월 국내 최초로 드라이브스루 환전 사업을 하겠다면서 샌드박스 서비스에 선정됐지만 아직까지 이용자가 한 명도 없다. 우리은행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왕래가 많은 공항에 드라이브스루 환전소를 설치하려 했지만 관련 업체들과 실랑이를 벌이느라 1년을 썼다. 그러다 결국 설치된 곳은 서울에 있는 우리은행 본점 지하 주차장이었다.

사업 내용이 공개돼 카피캣(모방 제품)이 쉽게 나오는 것도 한계다. 금융위에 따르면, 137개 사업 중 동일·유사 서비스는 80건(58.4%)에 달한다. 예컨대 2019년 6월 농협손해보험의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모바일 보험 쿠폰 서비스’가 선정됐는데, 2020년 4월 현대해상의 같은 서비스가 샌드박스 사업으로 선정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업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아이디어에서 시작하는데 지금은 동종 업종의 동종 사업에 대해서도 인가를 해주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게 무슨 혁신 금융이냐”고 말했다.

☞금융규제 샌드박스

규제에 막혀 엄두도 내지 못했던 혁신 금융 서비스에 대해 2년간 한시적으로 규제 예외를 인정해주자는 취지로 2019년 4월부터 시행됐다. 가능성 있는 사업은 규제를 풀어준다는 계획이었지만, 실제 규제 완화가 안돼 사업이 줄줄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