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밥 한번 먹자”

연락이나 만남을 마무리할 때 예의상 하는 말로 통한다. 보통의 경우엔 실제 만남이 언제 성사될지 알 수 없다.

기업 CEO들은 이 문장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외부 기업, 투자사와의 미팅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긴다. 당장 업무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언제, 어떤 기회로 돌아올지 모른다.

LG사이언스파크 양승진 팀장과 대화하는 리필리 김재원 대표. /더비비드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일수록 미팅을 소중히 여긴다. 다만 회사의 인지도가 낮다보니 굴지의 기업이나 투자사들과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최근 LG그룹이 직접 스타트업을 찾아간 현장이 있었다.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 8층 라운지에서 열린 LG소셜펠로우 12-1기 액셀러레이팅 파트너십 밋업데이를 찾았다.

◇LG가 만든 친환경 스타트업을 위한 자리

LG소셜캠퍼스 LG소셜펠로우 12-1기 단체사진. /더비비드

LG소셜펠로우는 LG소셜캠퍼스가 운영하는 친환경 분야 사회적경제기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LG소셜펠로우가 주최한 이번 밋업데이(Meet-up day)는 스타트업 대표와 투자기업의 대외협력 담당자 등 여러 산업 분야의 인력이 모여 사업의 확장을 도모하는 행사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기술, 인력, 자본등 자원을 연계하거나, 같은 스타트업끼리 협업의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 사단법인 피피엘과 MYSC의 주관으로 진행됐다.

LG소셜펠로우 12-2기에 뽑힌 5개 스타트업. /그래픽=이지혜 더비비드 디자이너

이번 행사에선 LG소셜펠로우 12-1기 5개 기업이 참여해 성과를 나누고, 협업을 위한 보완지점을 공유했다.

피피엘 한종훈 선임 매니저의 소셜펠로우 사업 소개로 행사가 시작됐다. 그는 “4개월간의 12-1기 소셜펠로우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는 자리”라며 “참여 기업의 평균 매출이 모두 200% 이상 성장했다”고 밝혔다.

이어 LG화학 CSR팀 이영준 책임, LG연암문화재단의 진해랑 책임, LG사이언스파크 양승진 팀장이 각각 기업 내 관심 분야와 협업 기대사항에 대해 말했다. LG화학의 이영준 책임은 “단발성이 아닌 지속가능한 사업을 연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사소한 아이템이어도 자주 소개해주고 문을 두드려달라”고 했다.

◇액셀러레이팅의 좋은 예

LG 관계자와 LG소셜펠로우 대표 사이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더비비드

펠로우 기업의 사업 성과 발표 및 소셜펠로우 지원사업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시간이 이어졌다. 12-1기 소셜펠로우 중 나누의 이윤노(33) 대표와 윤회의 노힘찬(34) 대표가 연사로 나섰다. 발표 이후 관계사 담당자와 펠로우 기업 간 질의응답이 쏟아졌다.

①사용할 때 죄책감 없는 일회용품 만드는 ‘나누’

나누 이윤노 대표. /더비비드

나누는 친환경 펄프몰드 용기를 만든다. 펄프 용기는 일반 일회용품에 비해 친환경적이지만, 수분 저항력이 떨어져 음식이 새거나 내구성이 떨어져 충격에 약하다. 나누는 펄프몰드 용기에 왕겨, 침엽수낙엽, 귤껍질 등 친환경 소재를 첨가해 내구성을 높였다. 겉면에 PE(폴리에틸렌) 코팅이 돼 있어 잘 분해되지 않는 일반 일회용품과 달리 표면을 친환경 용액으로 코팅해 100% 생분해가 된다.

이 대표는 “플라스틱 없는 세상을 꿈꾼다”는 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창업 전 대학병원 국제협력팀에서 남미지역 보건지원 사업을 담당했다”며 “해외를 자주 오가며 분리수거가 잘되는 국가가 드물고, 플라스틱 일회용품이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것을 보고 창업했다”고 밝혔다. 재사용 용기를 쓰면 되지 않냐는 질문에 “개발도상국의 경우 물이 깨끗하지 않아 세척이 어렵다”고 했다.

기업의 핵심 기술을 설명하면서 “감귤 껍질을 활용한 포장지, 대나무 빨대, 생분해성 컵라면 용기 등 다양한 제품을 상용화했다”고 밝혔다. LG소셜펠로우 선정 후에는 “사탕수수⋅브로콜리 줄기⋅쑥대⋅조릿대 등 섬유질이 많은 소재나 생태교란식물을 이용해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나누의 친환경 일회용기 제품들. 캠핑용품부터 반려동물 용품까지 다양하다. /나누

LG소셜펠로우 선정 이후 사업 성과에 대해서는 “대기업의 관심이 늘어난 것을 체감했다”고 했다. 그는 “이전에는 기업과의 협업 사례가 한두 건에 불과했지만, 펠로우 선정 이후 여러 식품 대기업의 오픈 이노베이션(다른 기업과 특정 기술이나 정보를 공유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전략)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나누’는 활동 기간 LG소셜펠로우 지원금과 더불어 빙그레농식품투자조합 등에서 5억원 이상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이 대표는 “올해 안으로 한 대기업 컵라면 제품 일부에 우리 친환경 용기가 사용될 예정”이라며 “어디가서 LG소셜펠로우라고 하면 일단 긍정적으로 들어준 결과”라고 했다.

②옷의 생애를 알려드립니다 ‘민트컬렉션’

윤회의 노힘찬 대표. /더비비드

윤회는 순환 패션 플랫폼 ‘민트컬렉션’을 운영하는 예비 사회적기업이다. 옷에 ‘민트ID’라고 부르는 암호화 라벨을 다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옷의 흐름을 추적하거나 정품을 인증하는 데 쓴다. 패션산업에서 과잉 생산되는 재고의류와 한두번 입고 버려지는 중고의류의 짧은 생명 주기를 연장하는 게 목표다.

노 대표는 기업 소개에 앞서 입고 있는 바지를 19살 때 샀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학창시절 내내 형의 옷을 물려입으면서 옷에 대한 욕망이 생겼다”며 “용돈으로 구제 의류 시장에 가서 맘에 드는 옷을 발견하는 게 취미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독일에서 미술 공부를 하며 해외는 중고의류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이라는 걸 알게 됐고, 귀국 후 2020년 정부지원과제를 통해 윤회를 창업하게 됐다”고 했다. 옷의 흐름을 추적하는 이유에 대해선 “재고 의류가 얼마나 남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브랜드사에 제공해 옷의 적정 생산량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민트ID와 민트컬렉션 웹 페이지 모습. /윤회

민트ID 라벨이 달린 옷을 구매한 소비자는 재판매 신청을 할 수 있다. 옷을 되파는 것이다. 그 댓가로 민트컬렉션 앱과 오프라인 스토어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지급받는다. 윤회가 회수한 옷은 민트컬렉션 플랫폼에서 팔리게 된다. 노 대표는 “민트컬렉션이라는 플랫폼 안에서 옷이 계속 순환하는 구조”라고 했다.

사업 활성화 방안에 대해선 “패션브랜드와의 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사업 확장을 도모하는 시기에 마침 LG소셜펠로우에 선정됐다”면서 “다양한 오픈 이노베이션의 기회가 생기면서 국내외 10개의 디자이너 브랜드와 제휴 협약을 맺었다”고 했다.

윤회는 LG소셜펠로우 선정 이후 대기업 패션 브랜드와의 PoC(시장성 검증)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지난 5월에는 LG소셜펠로우 운영사 중 하나인 MYSC로부터 투자를 받아 앱 내 민트ID 자동촬영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노 대표는 “아무리 작은 사회 문제라도 혼자 해결하려면 막막하다”며 “안전망 역할을 자처하는 지원 사업들 덕에 소셜벤처 창업가 동료들이 많아지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