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기구 전문 회사 ‘디랙스’ 유선경 대표, 디랙스에서 개발한 AI 트레이너 '랙스'. /더비비드

무병장수는 인간의 오랜 염원이다. 단순한 수명 연장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삶이 중시되고 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방법도 진화했다.

운동기구 전문 회사 ‘디랙스’는 인공지능 트레이너 ‘랙스(RAX)’를 개발했다. 피트니스 클럽을 방문해 운동한 사람들의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화된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디랙스를 이끄는 유선경 대표(55)는 원래 자동화 설비 등을 만드는 LG산전(현 LG일렉트릭)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했다. 잘나가는 대기업 연구원에서 창업가로 전직한 그의 도전기를 들었다.

◇국내 피트니스 시장 최초의 인공지능 플랫폼

디랙스는 창업한 지 올해로 21년 된 중소기업이다. 경사를 조절할 수 있는 트레드밀 ‘마이마운틴’, 동력 없이 달리는 ‘무동력트레드밀’ 등을 개발해 연 500억원의 매출을 낸다. 현재 40개국에 운동기구를 수출하는 저력 있는 강소기업이다.

랙스가 개인 신체정보, 컨디션 등을 분석해 추천하는 모습. /디렉스

디랙스가 새로 개발한 ‘랙스’는 트레이너 대신, 사람의 운동 기록과 신체정보를 모으고 분석해, 개인별로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을 추천하는 소프트웨어다.

피트니스 클럽에 있는 운동기구에 IoT(사물인터넷) 서비스를 설치한다. 동작감지센서 등을 이용해 클럽에 방문해 운동하는 사람들의 신체 정보와 운동 기록을 모은다. 이렇게 모은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분석해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사용자가 개인정보와 건강 관리 목표를 입력하면, 인공지능 트레이너인 랙스가 체력 상태와 컨디션을 분석해 맞는 운동법을 만들어 알려준다. 누군가에게는 트레드밀을 10분 달린 뒤, 쪼그려 앉았다 일어나는 스쿼트를 20회씩 3번 하라 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랫풀다운(수직 등 운동) 10회씩 3세트, 레그익스텐션(허벅지 운동) 20회씩 2세트하라는 식이다.

◇서울대 출신 대기업 연구원이 운동기구에 빠진 이유

유선경 대표는 1991년 서울대학교 기계설계학 학•석사를 졸업하고 LG산전연구소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뗐다. /유선경 대표 제공

유선경 대표는 기계설계학으로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LG산전연구소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뗐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나 와이어컷팅 가공기 개발 등에 참여했다.

운동을 좋아해서 피트니스 시장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연구소 선배가 트레드밀(러닝머신)의 인버터(전력 변환 장치)를 개발했는데 기계적인 문제와 관련해 저에게 조언을 구하셨거든요. 그때 운동기구 개발에 기계, 전기, 전자 등 주요 공학 기술이 모두 들어간다는 걸 알게 돼 그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사람이 사용하는 기구이다 보니 안전 요소 등 고려할 부분이 많아 무척 섬세한 기술력이 필요하더군요. 엔지니어로서 큰 관심이 생겼습니다.”

시장조사부터 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피트니스 산업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가 2000년 초반이었는데요. ‘몸짱’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도 이맘때였죠. 다만 피트니스 산업의 성장 속도에 비해 국내 운동 장비 규모는 영세한 수준이었습니다. 기구들의 품질이 좋지 않았고 다양성도 부족했어요. 그래서 기회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장의 성장성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고품질의 제품을 설계해 국내에서 제조하면 전망이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디랙스에서 개발한 다양한 트레드밀 라인업. /디랙스

2001년 디랙스의 전신인 ‘두비원’을 창업했다. “동료 엔지니어 3명과 사비 1억5000만원을 들여 개발을 시작했어요. 첫 개발품은 ‘마이마운틴(등산 운동기구)’입니다. 당시만 해도 경사 없는 평평한 트레드밀밖에 없었어요. 미국 스포츠의학회 자료를 찾아 높은 경사로를 걷는 것이 평지에서 달리는 것보다 더 뛰어난 체지방 분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개발한 제품입니다.”

처음부터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제품 개발과 설계에는 자신 있었어요. 그런데 창업 멤버 모두 영업 경험이 전무했어요. 개발자 입장에선 뛰어난 제품을 만들기만 하면 저절로 팔릴 거라 생각했는데,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군요. 국내 헬스클럽을 돌며 기구를 홍보했는데요. 대부분 트레드밀 하나로는 부족하고, 다양한 운동기구를 한 번에 구매하기를 원하더군요. 마치 신혼부부가 가전을 살 때 한 브랜드에서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등을 모두 사는 것처럼요. 혁신 제품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시행착오를 겪었죠.”

랙스(RAX) 사업설명회에서 발표하는 유선경 대표. /더비비드

제품군을 갖추기 위한 당장의 큰돈은 없었다. 국내가 아닌 해외로 눈을 돌려 문제를 해결했다. “회사에 영업팀을 꾸리고 각국의 바이어를 만나 제품을 홍보했습니다. 그 결과 제품 출시 1년 만에 일본 수출에 성공했습니다.”

수출로 벌어들인 자금은 제품군을 확장하는 데 투자했다. 매년 하나 이상의 생산공정을 만들었다. 2009년 유산소 운동기구 제품 라인업을 완성했다.

2013년부터는 군부대로 운동 기구를 납품하는 정부 사업을 수주하면서 40억원대에 머물러 있던 연 매출을 단숨에 87억원으로 올렸다. 이후 생산량이 늘어 경기도 안양에 7500㎡ 규모의 회사 사옥과 공장을 지었다. 국내에서 직접 운동기구를 설계하고 생산하는 브랜드는 디랙스가 유일하다.

◇미래 먹거리 찾아 연구한 결과

랙스를 따라 운동하는 모습. /디랙스

사업이 안정궤도에 오른 후에도 투자를 계속했다. “현상 유지 전략은 ‘패인(敗因)’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방심하면 한순간에 경쟁자에게 밀리죠. 2010년 기업부설 연구소를 세웠습니다.”

운동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로 이어졌다. 운동기구에 센서를 부착해 고객의 운동 능력을 분석하겠다는 발상으로 시작했다. “2011년 정부 과제의 일환으로 ‘직장 체력관리시스템’을 구축한 경험이 있어요. 당시 서버 구축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사업화가 힘들었는데요. 언젠가 운동기구가 알아서 사용자에게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세상이 올 거란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운동기구가 맥박, 호흡, 압력, 동작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데이터를 수집해 맞춤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2020년 3월 고객 관리 시스템 ‘디랙스핏’을 출시했다. “처음에는 트레이너를 보조할 고객 관리 시스템 형태였습니다. 운동기구에 부착된 센서로 운동량을 파악하고, 몸무게, 나이 등의 신체 정보와 조합하는 방식이죠. 트레이너는 데이터를 확인해 정확한 운동 프로그램을 고객에게 가르칩니다. 트레이너가 고객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는 호평이 많았습니다.”

디랙스 공장에서 운동기구를 제조하는 모습. /디랙스

내친김에 ‘사람’ 트레이너 필요 없이, 운동 소프트웨어가 개인 트레이너처럼 운동법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구상했다. 바로 개발에 돌입해 2022년 2월 인공지능 피트니스 플랫폼 ‘랙스’를 출시했다. 투자금 100억원과 20명의 개발진을 투입한 결과다.

“출시 후 1년 만에 디랙스핏을 통해 2만명이 넘는 고객의 다양한 운동 데이터를 확보했어요. 스포츠과학 전문가의 자문과 데이터 분석을 통해 알고리즘을 구축했어요. 실사용자와 피트니스센터 운영자의 의견도 담았죠. 그렇게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는 인공지능 PT(Personal Trainer) 랙스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사업장은 랙스를 활용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데이터 사용료를 지불하면 된다. 출시 전부터 유명 피트니스센터 5곳이 ‘랙스’ 도입을 확정했다.

피트니스 클럽(헬스장)에서 디랙스를 이용하는 모습. /디랙스

사용자는 일반 PT 가격의 10분의 1 수준의 이용료를 지불하고 인공지능 PT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다. “사업장, 트레이너, 사용자 모두에게 장점이 있는 플랫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업장은 플랫폼 도입을 통해 매출 제고를 기대할 수 있고, 트레이너는 데이터를 활용해 더 많은 고객을 관리할 수 있죠. 무엇보다 고가의 PT는 부담스럽지만, 자신에게 맞는 운동 프로그램을 알고 싶은 고객에게 안성맞춤입니다.”

사용자는 앱을 활용해 자신의 운동 결과와 신체 변화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 운동 기구에 부착된 센서 말고도 전용 스마트 밴드를 착용하면 더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운동 프로그램만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 트레이너처럼 운동 가이드도 제공합니다. 피트니스센터 내의 키오스크나 거울 부착형 모니터를 통해 랙스가 운동 방법을 알려주죠. 주어진 프로그램을 잘 수행하면 강도를 높이고, 이상 신체 반응이 나타나면 운동 부하를 조절하는 방식입니다.”

◇피트니스센터 앞으로 이렇게 바뀝니다

유선경 디랙스 대표. 국내에선 약 1만개 헬스장이 영업중이다. 다이어트, 몸 가꾸기에 대한 관심은 이전보다 늘었지만 유 대표는 아직 갈길이 멀다고 본다. /디랙스

국내에는 약 1만개 피트니스센터가 영업중이다. 다이어트, 몸 가꾸기에 대한 관심은 이전보다 늘었지만 유 대표는 갈길이 멀다고 본다. “선진국에선 전체 인구 대비 20%가 운동을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7.3%에 그칩니다. 소득 수준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가 있으니 피트니스 산업이 체계성만 갖추면 성장에 탄력을 받을 겁니다. 랙스가 피트니스센터의 가격 진입장벽을 낮추고 신뢰도를 높이면 운동인구가 늘고, 피트니스센터도 5년 내 3만개 넘게 늘 수 있다고 봐요.”

‘낙관론자는 모든 어려움에서 기회를 찾는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로 조언을 대신했다. “20년 간 사업을 운영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힘든 순간마다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국내 영업이 어려워 수출을 타진했을 때나 소프트웨어 개발에 거액을 투자했을 때 주변에서 말렸어요. 모두 위기라고 했죠. 같은 상황이어도 비관적으로 봤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겁니다. 확신이 있다면 위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