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로 각종 전시회와 박람회가 취소되면서, 스타트업들이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낼 기회가 크게 줄고 있습니다.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 서울 강남구청과 함께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온라인 박람회 ‘스타트업 블랙프라이데이’를 개최합니다. 홈페이지(http://iffestival.kr/)를 방문하시면 다양한 스타트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주요 참가 기업 인터뷰 시리즈 ‘득템 스타트업’을 연재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내가 쓴 글로 책을 내는 꿈을 꾼다. 하지만 출판사를 거쳐 책을 출간하는 일은 진입 장벽이 너무 높다. 대부분 포기하고 만다. 내 콘텐츠를 간편하고 저렴하게 책으로 만들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 서비스가 등장했다. 셀프 출판 앱 ‘하루북’을 출시한 ‘에스프레소북’의 황상철 대표를 만났다.
◇앱 출시 2년 동안 4000종 책 출간
하루북은 내가 쓴 글을 편집·디자인해서 책으로 제작해주는 서비스다. 단 한 권만 인쇄하는 것도 가능하다. 108페이지 책을 한 권 만드는 데 1만6400원, 365페이지 책은 3만5200원이면 된다.
“책이 안 팔려도 좋다면서 출판사를 구해 자비로 책을 출간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요. 편집, 디자인, 인쇄비 등을 포함하면 400만~500만원이 듭니다. 이걸 하루북에서 하면 많아도 10만~20만원이면 됩니다. 앱에서 스스로 편집과 디자인을 하니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습니다.”
2018년 말 앱을 출시해 가입자가 8만명을 넘어섰다. “2년이 채 안 됐는데 현재까지 제작한 책이 4000종이 넘습니다. 신규 가입자가 매달 4000~5000명씩 늘고 있는데요. 올해 말에는 10만명을 돌파할 걸로 예상합니다.”
하루북을 통해 제작되는 책은 대부분 누군가를 위한 책이다. “부모가 자녀의 백일, 돌 기념으로 매일 쓴 육아일기를 책으로 내고요. 군대 간 아들에게 쓴 편지를 모은 책,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한 여행기 등 누군가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초등학생부터 70대까지 하루북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해도 행복감을 느낍니다.”
◇여러 종의 책 한 번에 인쇄하는 프로그램 개발로 단가 낮춰
개발자로 16년(삼성SDS 10년, 네이버 3년, SK플래닛 3년 6개월) 넘게 일했다. “언젠가 ‘내 사업을 해야지’ 꿈이 있었습니다.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다 보니 저 같은 사람들을 위한 책 출간 서비스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수요가 충분할거라 생각해서 2017년 창업을 실행했습니다.”
전자책 기반의 셀프 출간 서비스 앱을 개발해서 출시했다. “원하는 작가에게 무료로 전자책을 쓸 수 있게 해주고, 책이 출간되면 인세로 수익을 내는 모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전자책이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전자책은 제작 비용이 적게 드는 장점이 있지만, 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전자책이 아니라 종이책이었어요. 종이책이 주는 아날로그 감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때 깨닫게 됐죠.”
1년 만에 전자책에서 종이책 제작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작가도 꼭 기성 작가가 아니라 누구나 출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종이책을 만들어줄 인쇄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책 한 종을 1~5권만 인쇄해선 단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를 냈다. 의뢰가 들어온 여러 종의 책을 한 데 모아 100권 이상씩 수량을 만들어 인쇄소에 맡기는 것이다. “여러 종의 책을 한 번에 인쇄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개발해서 인쇄소에 제공했습니다. 다품종 소량 인쇄를 가능하게 한 거죠. 인쇄소가 처음엔 얼마나 물량이 될까 의심하더니, 이제는 먼저 물량을 달라고 연락해옵니다.”
◇친구의 ‘넌 사업놀이’ 지적에 정신 퍼뜩
서비스가 자리잡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동안 수익이 나지 않아 직장을 다니며 모은 돈 수억원을 쏟아부어야 했다. “그럼에도 직원 사이 갈등과 사무실 임대료 문제, 새로운 앱 개발의 어려움 등 문제가 쌓이면서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고민까지 했습니다.”
대기업 임원으로 있는 친구의 조언이 돌파구가 됐다. “그 친구가 제게 ‘가만히 보면 넌 네가 가진 돈으로 사업 놀이를 하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회사 수익이 나지 않는 상황인데 외부 IT 강의를 나갈 여유를 내고, 직원들에게 어려운 내색 없이 월급을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줬거든요.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친구가 ‘사업 놀이’라고 했던 거에요.”
정신이 퍼뜩 들었다. 바로 회사 운영 방식을 바꿨다. 회사의 현실을 직원에게 냉정하게 알리고, 목표를 뚜렷하게 제시했다. 목표 기간 내 수익이 나지 않으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도 심어줬다. “그 뒤로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어요. 정보통신산업진흥원 R&D 자금을 받고, 난항을 겪던 새 버전의 앱도 완성됐어요. 그러자 가입자와 매출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이용자 커뮤니티 목표
-대기업을 그만두고 창업한 걸 후회하지 않나요.
“회사 다닐 때 연봉이 꽤 높았고, IT 강의 하러 다니면서 번 부수입도 적지 않았습니다. 창업해서 회사 키우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줄 알았으면 아마 하지 않았을 거에요. 그래도 후회하진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사업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이 서비스가 대중적으로 사업성이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꼭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하루북은 학교 책 쓰기 교육에도 많이 활용된다. 학생들이 쓴 글을 간편하게 편집해서 저렴한 가격에 책으로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 초·중·고교와 도서관, 과학관 등 100곳 넘는 기관에서 하루북으로 책 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하루북을 쓰는 사람들을 하나의 커뮤니티로 묶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다. “지금은 각자 자기가 쓴 글을 책으로 만드는 데 그치는데요. 앞으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용자들이 함께 책을 만들고, 다른 이용자가 쓴 글에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서비스도 하려고 합니다.”
‘스타트업 블랙프라이데이’ 홈페이지(http://iffestival.kr/)를 방문하시면 ‘에스프레소북’ 등 많은 스타트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