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AI를 이끌었던 김성훈(오른쪽) 업스테이지 대표와 이활석(왼쪽) 최고기술책임자가 20일 서울 중구 조선일보 사옥에서“국내 기업이 AI 무대의 주 인공이 되도록 돕겠다”며 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이고 있다. /김지호 기자

[시리즈를 시작하며...컴퓨터가 인간과 같이 사고(思考)하는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은 향후 10년간 세계 테크 판도를 송두리째 흔들 것이다. 하지만 연간 수십조원씩 쏟아붓는 미국·중국의 ‘빅테크’ 앞에선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독일·영국도 쩔쩔매고 있다. 송곳 같이 ‘딱 한 곳에서 통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것이 생존의 관건이다. 모두가 알지만 선뜻 못 하는, 그런 AI 스타트업을 만든 이들이 바로 한국의 AI 추격자들이다.]

네이버에서 인공지능(AI) 개발을 총괄하던 김성훈(48) 홍콩과학기술대 교수가 지난달 사표를 던졌다는 소식은 국내외 AI 업계의 큰 화제였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AI 연구학회 등에서 우수 논문상을 4회 받은 ‘AI 석학(碩學)’으로 꼽힌다. 홍콩과기대를 휴직하고 2017년부터 네이버 AI를 총괄해왔다.

그가 지난 5일 AI 전문가 8명과 함께 ‘업스테이지(upstage)’란 스타트업을 창업해 돌아왔다. 네이버와 카카오, 엔비디아, 구글 출신의 내로라하는 AI 핵심 개발자를 한데 모았다. 공동 창업자의 화려한 면면에 업계에서는 ‘AI 어벤저스’라는 반응이 나왔다.

◇"국내외 기업, AI 무대로 올려주겠다"

20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김성훈 업스테이지 대표는 “네이버에서 일하는 것도 좋았지만, 대기업에서는 이미 진행 중인 사업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창업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AI 기술은 실제 산업에 적용 가능한 수준으로 빠르게 성숙하고 있고, 앞으로 3~5년간 거의 모든 산업을 점진적으로 혁신해 나갈 것”이라며 “보다 많은 기업이 AI 혁신의 물결에 올라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했다.

업스테이지에는 AI의 중요한 두 축인 ‘이미지(사진)’와 ‘텍스트(문자)’ 전문가가 포진해 있다. 네이버에서 비주얼AI를 총괄했던 이활석(40)씨, 파파고 번역 서비스 개발을 이끌었던 박은정(35)씨가 각각 기술과 연구 개발을 총괄한다. 카카오, 엔비디아 출신뿐 아니라 글로벌 AI 경진대회 캐글의 세계 12위 인재도 합류했다. 조경현 뉴욕대 교수, 레이첸 홍콩과기대 빅데이터센터장이 자문역을 맡았다. 이런 ‘AI 어벤저스’들이 달라붙어 기업이 원하는 혁신과, 실제 AI로 구현 가능한 부분의 ‘교집합’을 찾고, 회사가 스스로 AI 혁신을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교육부터 팀 구성, 사업 접목까지 원스톱 서비스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를 ‘AI 로켓에 기업들을 태운 뒤, 가속도를 붙여 작은 로켓으로 내보내는 것’으로 설명했다. 이활석 CTO(최고기술책임자)는 “지금 국내 기업들의 AI에 대한 니즈(needs)는 굉장히 크고, 경쟁에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 역시 크다”고 했다. 그는 “네이버에서 실제로 AI를 사업에 적용하면서 어떤 부침(浮沈)이 있는지, 어떻게 해야 경영진을 잘 설득할 수 있는지, 최소한의 비용으로 어떻게 빨리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지 등 한마디로 ‘맨땅에 헤딩하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 우리 역할”이라고 했다. 회사 이름도 국내 기업뿐 아니라 한국 전체의 AI 기반을 닦아 이들을 무대 위(upstage) 주인공으로 만들겠다는 뜻에서 지었다. 회사를 설립한 지 2주 남짓 됐지만 이미 국내 금융·통신사들이 ‘러브콜’을 보내 협력을 진행 중이다.

◇"글로벌 AI 인재 영입 구심점"

네이버는 AI 핵심 인재를 놓쳤지만, 이 회사의 ‘파트너’로 새 협력 관계를 맺었다. 김 대표는 3년 전 네이버 AI 총괄로 합류해 3명이었던 AI팀을 250명 넘는 규모로 키웠다. 그의 사의(辭意)에 이해진 창업자를 비롯해 주요 경영진이 모두 만류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첨단 기술을 보편화하고, 더 많은 회사가 참여할 수 있는 AI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뜻을 결국 이해해줬고, 지원도 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CTO는 “현재 네이버의 숙제인 AI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하겠다는 뜻에 네이버가 공감해줬다”고 했다. 업스테이지는 네이버와 손잡고 AI 인재 육성을 위한 ‘실무형 AI 집중교육’ 프로그램 개발에도 나선 상태다. 네이버 AI랩 하정우 소장도 이 회사 자문역으로 합류했다.

김 대표는 국내외 기업의 AI 혁신뿐 아니라 ‘글로벌 AI 인재’를 영입하는 구심점으로 업스테이지를 키운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홍콩·싱가포르에 지사를 내는 것도 검토 중이다. 그는 “AI 분야는 많은 보상을 주고서라도 키맨(keyman)을 영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글로벌 인재를 빠르게 모셔올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왜 여기서 일해야만 하는가’를 설득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라고 했다. 이어 “네이버 시절 중국과 베트남에서 학부 출신 AI 천재들을 영입하려다 비자 발급이 어려워 포기한 적이 있다”며 “정부가 이런 부분도 해결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김 대표가 교수 신분으로 네이버에 합류하고, 창업까지 한 데는 홍콩과기대의 지원도 한몫했다. 그는 “한국 대학과 달리 홍콩과기대는 창업을 적극 권장하고 또 ‘무제한 휴직’도 가능하다”며 “AI 연구가 씨를 뿌리는 것이었다면, 그걸 실전에 적용해 많은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꽃을 피워내는 역할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