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등에 전자장치를 장착한 사이보그 바퀴벌레. 사고 현장에서 건물 잔해 사이를 돌아다니며 생존자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사진 싱가포르 난양공대 2 미국 하버드대의 케빈 키트 파커 교수는 박성진(현 조지아 공대 교수) 박사, 최정우 서강대 교수와 함께 길이 16㎜인 사이보그 가오리를 개발해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사진 사이언스 3 자체 전력 공급이 가능한 사이보그 바퀴벌레. 배에 부착된 박막 태양전지로 필요한 전력을 자체 충당한다. 사진 일본 이화학연구소 4 과학자들은 다양한 사이보그 곤충을 개발했다. 몸에 장착한 전자장치가 특정 방향으로 이동시키거나 뇌에서 나타나는 특정 신호를 외부로 보낸다. 사진 UC 버클리·드레이퍼·워싱턴대

새해 첫날 규모 7.6의 강진(强震)이 덮친 일본 이시카와현 와지마(市)는 건물이 모두 무너져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 구조대원이나 장비가 접근하기 어려워 생존자 탐색이 힘든 상황이다. 로봇이 대안이지만 문제는 크기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2023년 12월 이번 일본 강진을 예견이라도 한 듯 장차 지진 피해 현장에서 몸집이 작고 날랜 사이보그(cyborg) 바퀴벌레가 생존자 수색에서 활약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사이보그는 동물과 기계가 결합한 형태다.

바다와 호수에는 사이보그 해파리와 물고기가 환경오염을 감시할 수 있다. 동물은 오랜 진화를 통해 서식 환경에 최적화됐다. 자연의 지혜와 인간의 지식이 결합한 사이보그 동물들이 인명과 환경을 구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개발 계기

사토 히로타카(Sato Hirotaka)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는 2023년 1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인텔리전트 시스템’에 “몸길이 5.7㎝인 마다가스카르 바퀴벌레와 체온을 감지하는 적외선 카메라, 위치 제어 프로세서를 결합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무선으로 신호를 보내면 바퀴벌레 등에 붙인 전자장치가 특정 방향으로 전류를 보낸다. 왼쪽에 전기 자극을 주면 바퀴벌레는 오른쪽으로 돈다. 이런 방식으로 바퀴벌레를 원하는 곳으로 보낼 수 있다. 적외선 카메라는 열을 감지해 사람인지 구분한다.

실험실에서 사이보그 바퀴벌레는 장애물을 피해 지시한 곳으로 이동했다. 사토 교수는 “현재 배터리는 8시간 작동하지만 앞으로 태양광이나 혈액의 생체에너지를 이용하면 작동 시간을 크게 늘릴 수 있다”며 “앞으로 3~5년 안에 사이보그들을 재난 현장에 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토 교수는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UC 버클리)에서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일본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지진 피해 현장에서 벌어지는 힘든 수색·구조 작업에 사이보그 곤충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살아있는 곤충에 각종 장비를 달아 건물 잔해 속으로 투입해 생존자를 찾겠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원격 조종이 가능해야 한다. 앞서 그는 UC 버클리에서 딱정벌레인 꽃무지 등에게 전자장치를 달고 근육과 날개에 전류를 흘려 비행 방향을 조종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진 곳에는 바늘구멍만 한 틈도 비집고 들어가는 바퀴벌레가 답이라고 생각했다.

박막 태양전지로 자체 발전(發電)도 가능

사이보그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는 사토 교수와 함께 2022년 9월 전력을 자체 충전할 수 있는 사이보그 바퀴벌레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마다가스카르 바퀴벌레의 배 위에 두께 4㎛(1㎛는 100만분의 1m)인 아주 얇은 박막형 태양전지를 붙였다. 연구진은 태양전지를 30분 충전시켜 2분간 바퀴벌레를 원격 제어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방향 제어 기술도 정교해지고 있다. 사토 교수는 처음에 꽃무지의 날개 근육에 전류를 흘려 비행 방향을 조종했다. 하지만 주변 근육까지 같이 자극돼 정밀도가 떨어졌다. 난양공대 연구진은 2018년 딱정벌레인 거저리의 더듬이에 전류를 흘려 근육을 건드리지 않고 이동 방향을 조종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사이보그 바퀴벌레는 꼬리에 있는 감각기관을 자극했다.

폭발물을 감지하는 사이보그 곤충도 나왔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진은 2020년 폭발물을 80% 정확도로 탐지하는 사이보그 메뚜기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메뚜기의 뇌에 전선을 연결했다. 메뚜기가 폭발물 냄새를 감지하면 더듬이의 신경세포에서 뇌 후각 중추로 전달되는 전기신호가 달라졌다. 연구진은 전기신호를 분석해 일반 향기 물질과 폭발물은 물론 폭발물 종류까지 구별할 수 있었다.

바다, 호수에서 환경도 감시

육지에 사이보그 곤충이 있다면 물에는 사이보그 해파리와 물고기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의 존 디비리(John Dabiri) 교수와 콜로라도 볼더대의 니콜 쉬(Nicole Xu) 교수 연구진은 2020년 국제 학술지 ‘생체모방’에 해파리 사이보그를 발표했다. 해파리에 전극을 붙이고 신경 고리를 자극하면 평소보다 세 배 빨리 헤엄쳤다.

해파리는 해양 사이보그에 적합한 동물이다. 에너지 효율이 높고 깊은 곳까지 잠수할 수 있다. 생체를 쓰므로 심해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모습과 조용한 움직임 덕분에 눈에 띄지 않는다. 실험에서 사이보그 해파리 주변으로 물고기가 다가오기도 했다.

미국 하버드대의 케빈 키트 파커(Kevin Kit Parker) 교수는 2022년 ‘사이언스’에 사람 심장근육 세포를 가진 사이보그 물고기를 발표했다. 심장이 박동하듯 전류를 흘리면 근육세포가 수축, 이완하면서 사이보그 물고기가 몸통을 좌우로 흔들며 이동했다. 당시 파커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던 이길용 세종대 교수와 박성진 조지아 공대 교수가 논문 공동 제1 저자로 참여했다.

앞서 2016년 파커 교수와 박성진 교수, 최정우 서강대 교수는 길이 16㎜인 사이보그 가오리를 개발해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빛에 반응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생쥐 근육세포를 사용했다. 가오리 한쪽에 강한 빛을 주면 그쪽 근육이 더 강하게 수축해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내구성 있는 생체 재료와 대량생산이 관건

사이보그 곤충이나 물고기를 상용화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먼저 재난 현장이나 거친 자연에서 임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해야 한다. 그러려면 새로운 생체 재료가 필요하다.

미국 카네기멜런대 연구진은 바다에 사는 갯민숭달팽이의 근육을 수중 사이보그에 적용했다. 갯민숭달팽이는 온도와 염분의 변화가 심한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포유류보다 사이보그 활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대량생산도 필수적이다. 사이보그 바퀴벌레는 한 마리보다 수백 마리를 풀면 훨씬 효과적인 탐색이 가능하다.

일부에서는 사이보그를 두고 동물 학대라고 비판한다. 과학자들은 “실험동물 윤리 지침에서 곤충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며 “그렇지만 사이보그 실험에서 곤충의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