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1일 대구 달성군 HD로보틱스 현풍공장에서 로봇이 제조되고 있다./김동환 기자

지난 21일 오후 대구 달성군 대구경북 경제 자유 구역에 위치한 HD현대로보틱스 공장. 출입구 인근에 설치된 철창 안에서 3m 높이 노란색 로봇 팔이 무게 추를 매달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인 HS220 로봇이 출하 전 마지막 검수를 받고 있는 모습이었다. 220㎏짜리 추를 단 로봇 팔은 아무런 소음도 내지 않고 부드럽게 위·아래·양옆으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회사 관계자는 “작동 중 필요한 다양한 움직임을 4시간 이상 구동하며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다”고 했다. 공장 한편엔 다음 날 출하할 로봇 35대가 포장돼 있었다.

지금까지 한국은 로봇을 ‘사서 쓰는’ 국가였다. 노동자 10만명당 로봇 비율을 뜻하는 로봇 밀집도는 수년째 세계 최고 자리를 유지하지만, 로봇 부품 국산화율은 40% 수준에 그친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로봇 단품과 부품 수출액은 1조3500억원에 불과하다. 글로벌 로봇 시장 규모(약 243억달러)의 4%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구조가 바뀌고 있다. HD현대로보틱스를 포함해 두산, 삼성, 한화 등 대기업이 로봇 시장에 뛰어들고, 스타트업까지 나서면서 로봇을 ‘만들어 파는’ 국가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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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전자 기반으로 대기업 뛰어드는 로봇 산업

HD현대로보틱스 공장에서는 방역용 로봇도 생산한다. HD현대로보틱스는 전통 산업용 로봇을 주력으로 해왔지만 올 초 협동 로봇 제조 라인을 신설했다. 공장이나 사무 현장에서 사람과 함께 일하는 협동 로봇, 식당·공항·병원 등에서 사용하는 서비스 로봇 등을 새로 출시했다. 유승윤 HD현대로보틱스 산업용 로봇 영업팀장은 “글로벌 산업용 로봇 시장의 강자인 일본·유럽 기업을 성능 면에서는 거의 따라잡았다고 본다”며 “기술력을 확장해 차세대 제품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로봇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은 것은 HD현대로보틱스뿐이 아니다. 두산로보틱스는 별도 안전장치 없이 인간과 함께 일할 수 있는 협동 로봇에 주력하고 있다. 두산로보틱스는 전체 매출의 70%가량을 북미와 유럽에서 거둔다. 올해 초 삼성은 협동 로봇 스타트업인 레인보우로보틱스에 투자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2족·4족 보행 로봇과 협동 로봇인 RB 시리즈를 개발한다. 한화도 10월 협동 로봇과 무인 운반차(AGV) 사업을 분리해 신설 법인 ‘한화로보틱스’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박상수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자동차·전자 등 국내 주요 로봇 수요 기업들이 로봇 산업에 직접 뛰어들면서 시너지가 기대된다”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니치 마켓’ 노리는 스타트업들

한국 스타트업들은 식품·배달·서빙 등 니치 마켓(틈새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스타트업 뉴빌리티는 지난 6년여간 대학 캠퍼스와 서울 서초구 등 시범 지역에서 집(건물) 앞까지 식료품을 배달해주는 자율주행 배달 로봇 뉴비를 운영했다. 이 노하우를 바탕으로 내년부터 본격적인 양산 및 해외 수출에 나설 예정이다. 미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베어로보틱스는 식당 안에서 서빙을 자동으로 하는 서빙 로봇 ‘서비’를 개발, 일본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유치했다. 현재 미국과 일본 서빙 로봇 시장 1위를 차지하며 누적 1만대 이상을 판매했다.

KAIST 출신 5명이 2020년 창업한 에니아이는 1분 만에 햄버거 패티를 굽는 자동화 로봇 ‘알파그릴’을 개발했다. 알파그릴은 다음 달 미 뉴욕 주요 버거 브랜드 매장에 입점해 본격 실증 테스트에 들어간다. 이 로봇은 시간당 200장의 패티를 굽는다. 황건필 에니아이 대표는 “로봇 팔을 직접 개조하고, 머신러닝(기계학습)을 통해 로봇이 정교하게 움직이도록 설계했다”며 “성능이 확실한 로봇이라면 해외시장도 도전할 만하다”고 했다. 바리스타 로봇·아이스크림 로봇 등 서비스 로봇을 개발하는 엑스와이지, 물류센터용 자율주행 로봇을 개발한 트위니 등 한국 로봇 스타트업들도 100억원이 넘는 초기 투자를 유치하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