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태권브이’ 로봇의 조종 방법은 간단하다. 조종석에서 주인공(김훈)이 하는 태권도 동작 그대로 로봇도 움직이는 방식이다. 요즘 과학자들도 이런 식으로 조종하는 로봇을 연구하고 있지만, 태권브이와 같은 방식으로는 아직 나아가지 못했다. 다만 조종석의 사람과 로봇을 무선으로 연결해 사람 움직임대로 로봇을 동작시키는 방식의 ‘아바타 로봇’은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고 있다. 지난달 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서 총상금이 1000만달러(약 133억원)나 되는 글로벌 로봇 대회가 열렸다. 구글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 세계적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 등이 이사로 참여한 미국의 비영리단체 엑스프라이즈(XPRIZE)재단이 연 ‘아바타(AVATAR)’ 경연이다. 가상 세계에서 자신을 투영하는 캐릭터(아바타)처럼 로봇을 움직여 다양한 임무 수행 능력을 겨루는 이 대회에 내로라하는 세계 대학·기업의 로봇팀 99곳이 출사표를 던졌고, 결선에는 17팀이 올랐다.

◇”원격 존재(tele-presence) 구현”

이 대회에서 세계 6위, 아시아 팀 중에서는 최고 성적을 낸 유니스트(UNIST·울산과학기술원)를 지난달 21일 찾아갔다. 바이오 로보틱스·제어 연구실 화면에 결선 당시 중계 영상이 나왔다. ‘팀 유니스트(Team UNIST)’의 아바타 로봇이 경연장에 들어섰고, 멀리 떨어진 공간에 마련된 조종석에는 심사위원이 앉았다. 그가 머리에 쓴 디스플레이(HMD)는 로봇과 무선으로 연결돼 로봇의 시야로 사방을 살펴볼 수 있고, 로봇을 통해 말하고 듣는 것도 가능하다. 머리·팔·손가락·허리의 움직임도 연동돼 조종사 움직임대로 로봇이 행동했다. 조종사가 자기 팔을 움직여 손가락으로 쥐는 동작을 하면, 그대로 로봇이 팔과 손가락을 움직여 눈앞에 놓인 잔을 들어 건배하는 식이다. 팀 유니스트를 이끈 배준범 기계공학과 교수는 “영화 ‘아바타’에서처럼 주인공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실제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끼고 행동하는 ‘원격 존재(tele-presence)’를 구현한다는 취지”라며 “사람이 원격 조종하는 아바타 로봇을 재난 현장이나 우주 등에 보내 위험한 임무를 해내도록 하는 게 중장기 목표”라고 했다. 대회 결선에서 주어진 임무는 문 개폐 스위치 작동, 드릴 구동과 나사 분리, 촉각으로 사물 구별 등 10가지. 이를 25분 안에 끝내야 했다. 로봇 조종법을 설명받은 심사위원이 조종석 발판을 앞뒤, 좌우로 기울이는 방식으로 로봇을 이동시켰다. 로봇 조종을 심사위원이 하도록 한 규정은 누구나 스스로의 움직임으로 손쉽게 로봇을 조종할 수 있어야 하는 아바타 로봇의 특성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다. ‘팀 유니스트’ 로봇은 임무를 받은 뒤 스위치를 당겨 문을 열고, 멀리 떨어진 목적지로 이동했다. 여러 배터리 가운데 내용물이 있는 무거운 것을 구별해 집어 들고 홈에 정확히 맞춰 넣는 임무를 해냈다. 이어 드릴을 손에 쥐고 구동해 나사를 푸는 일도 성공했다. 가장 난도 높은 임무를 해내자 2000여 명이 들어찬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1위와는 총점 차 1.5점으로 집계됐다.

◇가상현실 전용 장갑 개발

유니스트가 아바타 로봇을 개발한 계기 가운데 하나는 재난 현장에서 수요가 클 것이라는 전망이다. 상황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재난 현장에선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고, 사람이 멀리 있는 로봇을 동작시켜 복잡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로봇이 느끼는 시각·청각·촉각은 물론이고 외부 힘 등을 사람이 똑같이 느낄 수 있도록 관련 기술을 개발해왔다. 지난해 내놓은 가상현실 장갑 기술이 한 예다. 장갑을 착용하고 가위바위보 등 손가락을 움직이면 가상현실에 그대로 구현되고, 가상세계에서 물체를 만지면 그 촉각이 장갑을 통해 전달되는 방식이다. 가상현실에서 뜨거운 불에 손을 대면 그 열기를 바로 느낄 수 있다. 연구진이 자체 개발한 액체 금속 프린팅 기법으로 신축성 있는 센서를 만들어 장갑에 부착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사용자의 손 움직임을 가상세계에 전달하고, 가상세계 자극은 장갑을 통해 사용자가 느끼도록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