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8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원회의에서 국가 전략 기술 육성 방안의 세부 계획을 발표했다.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인공지능(AI)·바이오 등 12개 전략 기술을 육성해 기술 패권 확보와 미래 먹거리 창출에 나서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미국·중국·일본·유럽연합 등 전 세계에서 기술 패권 전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한국이 기술 강국으로 도약할 청사진을 내놓은 것이다. 특히 반도체와 인공지능·배터리·바이오 분야에서는 세계 주요국이 기술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일 전망이다. 이날 회의는 윤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로, 경제부총리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경제수석·과학기술비서관이 참석했다.

◇반도체·AI 등 12개 전략 기술 선정

정부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가 전략 기술 12개와 기술 목표를 선정했다. 예컨대 메모리반도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밀리는 시스템 반도체 점유율을 현재 3%에서 2030년 10%로 확대하며, 2026년에는 세계 최초로 6G(세대) 기술을 시연하겠다는 목표다. 이 밖에 2031년 우리 발사체로 달 착륙선 발사, 2030년 이차전지 200억달러(28조5000억원) 수출 달성도 내세웠다. 또 차세대 원자력인 소형모듈형원자로(SMR)의 독자 노형을 2028년까지 확보하고, 선도국 대비 양자 기술 수준을 현재 62.5%에서 2030년까지 90%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12개 국가 전략 기술 분야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올해 3조74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내년 4조1200억원 규모로 확대한다. 양자컴퓨팅·센서,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 같은 시급성이 높은 기술 개발에 2651억원을 신규 투자할 계획이다. 또 각 부처에서 제각각 수행하고 있는 국가 전략 기술 사업을 임무 중심으로 통합·조정한다. 현재 18개 부처·청에서 이뤄지는 304개 사업을 범부처 통합형 예산배분 방식을 도입해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이외에 국가 전략 기술 핵심 인재 확보와 산학연 협력 강화도 추진할 방침이다.

민간과의 협력도 확대·강화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전략기술 프로젝트’는 산업계가 임무 목표 설정 단계부터 전 과정에 참여한다. 정부는 “프로젝트 기획·관리·평가 전반에 걸쳐 민간 최고 전문가에게 높은 재량권을 부여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차세대 원자력과 양자컴퓨팅을 시작으로 내년 말까지 총 10개 프로젝트를 선정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최고 기술 선도국 대비 기술 수준 90% 이상인 전략 기술 분야를 현재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차세대 통신 3개에서 2027년 8개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전 세계 전략 기술 육성 경쟁

정부가 국가 전략 기술 육성에 나선 배경에는 과학기술이 단순히 기술을 넘어 국가 경제와 외교·안보를 좌우하는 영역이 됐기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전략 기술 발굴과 법률 제정, 조직 신설을 통해 기술 패권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최근 심화된 미·중 기술 패권 다툼은 각국의 경쟁을 촉진하고 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바이오, 우주는 선진국들이 공통으로 육성하는 분야다. 미국은 지난 8월 반도체 및 과학법을 제정해 10개 핵심 기술에 약 330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반도체·인공지능을 포함한 10대 핵심 기술 연구를 위해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산하에 기술혁신국을 신설했다. 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 핵심 원료를 자립화하고 바이오 제조 확대 등에도 예산 2조8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중국도 7대 과학기술을 개발하고 8대 전략적 신흥사업을 지정했다. 인공지능·양자 정보·뇌과학 등 장기 육성이 필요한 과학기술을 2025년까지 확보하고, 신소재나 로봇기술 등의 전략 산업을 2035년까지 집중적으로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일본은 공급망 강화와 첨단 기술 육성을 위해 경제안보상을 신설하고 경제안전보장법을 제정했다. 일본 정부는 경제 안보에 필수적인 기술 20가지를 ‘특정중요기술’로 선정하고, 최대 5000억엔을 지원할 예정이다. 20가지 기술에는 AI(인공지능)와 양자정보과학, 바이오가 포함됐다. 유럽연합(EU)도 원재료, 배터리, 반도체, 수소, 의약품원료, 클라우드를 6대 전략 기술로 육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