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서 이세돌 9단을 꺾은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 CEO 데미스 허사비스가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인공지능 ‘알파폴드’로 올해의 ‘브레이크스루상’(Breakthrough Prize)을 받았다. ‘실리콘밸리 노벨상’ ‘과학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브레이크스루상은 상금이 노벨상(약 13억원)의 3배 이상인 300만달러(약 42억원)에 달해 과학계에서 가장 상금이 큰 상으로 꼽힌다. 2012년 러시아 출신 벤처투자자 유리 밀너와 페이스북(현재 메타)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등이 만든 상이다.

2020년 7월 한국을 방문한 딥마인드의 CEO 데미스 허사비스./연합뉴스

브레이크스루상 재단은 22일(현지 시각) 생명과학, 기초 물리학, 수학 분야의 ‘브레이크스루상’과 신진 학자들에게 시상하는 ‘뉴허라이즌상’ ‘뉴프런티어상’ 등 총 25명을 선정해 총상금 1575만달러(약 223억원)를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허사비스가 개발한 알파폴드(AlphaFold)는 아미노산 서열로부터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하는 AI(인공지능)다. 일반적인 단백질은 20가지 아미노산이 수십~수천개 연결된 실 형태인데, 아미노산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다양한 화학결합을 유도해 구부러지고 비틀어져 3차원 입체 구조를 이룬다. 마치 유선 이어폰의 긴 줄을 주머니에 구겨 넣었을 때 엉키는 형태를 이루는 것과 비슷하다.

단백질은 구조가 곧 기능을 결정하기에 단백질의 구조를 알아내면 체내 작용을 파악할 수 있다. 질병의 원인을 찾고 치료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단백질 구조 확인이 필요한 이유다. 그동안 과학계에서는 아미노산 서열로 접힘(folding)을 예측해 단백질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난제로 꼽혀왔다. 알파폴드가 나오기 전까지는 단백질 종류 2억여 개 가운데 구조를 확인한 것은 20만개가 채 안 됐다.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CEO가 강연하는 모습. 알파고를 개발한 그는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인공지능‘알파폴드’로 올해의‘브레이크스루상’을 받았다. /유튜브

이런 상황에서 허사비스가 인공지능 ‘알파폴드’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돌파구를 열었다. 과학자들이 기존에 밝혀낸 단백질 구조 관련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학습해 아미노산 간 거리와 화학결합의 각도, 에너지 효율성 등을 계산했고, 이를 통해 예측한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빠르고 정확하게 보여준 것이다.

아미노산 서열 데이터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경연대회(CASP·2년 주기 개최)에서 ‘알파폴드’는 2018년 우승에 이어, 2020년에는 92.4점으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올해 알파폴드는 인체 2만여 개 단백질의 거의 모든 구조를 보여줬고, 지난 7월에는 지구상에서 발견된 2억여개 전체의 단백질 입체 구조를 예측한 데이터를 공개해 생명과학 분야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미 알파폴드를 활용해 항생제 내성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처럼 단백질 접힘에 오류가 생겨 발생하는 질병 진단과 치료를 비롯, 신약 개발 등 의학 혁명이 올 것으로 과학계는 기대한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2016년 알파고 승리를 이끈 허사비스 팀이 서울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인공지능의 단백질 구조 분석에 모든 관심을 쏟았다”고 전했다.

신진 여성 수학자가 받는 ‘마리암 미르자하니 뉴프런티어상’에는 박진영 스탠퍼드대 수학과 연구교수가 이름을 올렸다. 수학 분야 난제 중 하나인 ‘칸-칼라이 추측’을 증명해낸 성과를 인정받았다. 한국에서 7년간 중·고교 수학 교사로 근무한 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2020년 럿거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AS)를 거쳐 현재는 스탠퍼드대에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