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는 중국 우한의 집단감염에서 시작됐다. 박쥐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야생동물이 사람과 접촉하면서 코로나 대유행을 유발했다는 것이 과학계의 중론이었다. 코로나를 처음 세상에 알린 중국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중국 과학자들이 태도를 바꿨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 18일 “중국 과학자들이 코로나가 중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쏟아내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이 고대사를 자기들 입맛에 맞게 바꾸는 동북 공정을 추진한 것처럼 코로나 기원에 대해서도 자국 이익을 관철하는 ‘과학 공정’을 시작한 것이다.

중국 박쥐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없다?

중국 과학계의 태도 변화는 지난해 9월 논문 사전 출판 사이트인 리서치 스퀘어에 올라온 논문에서 잘 나타난다. 베이징 셰허 의대의 우지치앙 교수 연구진은 “남쪽 아열대 지역에서 추운 동북부까지 박쥐 1만7000여 마리를 잡아 조사했지만 이번 코로나를 유발한 바이러스와 유사한 종류가 단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는 코로나가 다른 곳에서 시작했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대의 앨리스 휴즈 교수는 앞서 지난해 6월 생명과학 분야 최고 학술지인 ‘셀’에 정반대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2019년 5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중국 윈난성의 시솽반나 열대식물원에서 박쥐 342마리를 잡아 조사했다. 휴즈 교수는 뉴욕 센트럴파크 3배 면적인 이 식물원에서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와 비슷한 바이러스 네 가지를 발견했다. 중국 연구진도 휴즈 교수가 연구한 지역 인근에서 박쥐를 잡아 조사했지만 전혀 다른 결과를 얻은 것이다.

과학계는 최근 중국 과학자들이 코로나가 중국 아닌 곳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를 잇따라 발표하는 것은 정부의 압력이 작용한 탓이라고 추정한다. 중국 과학자들도 처음엔 코로나가 자국에서 시작했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우한시 보건위원회는 2019년 12월 31일 화난 수산 시장과 연관된 폐렴 환자 27명이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3주 뒤 중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모든 증거는 화난 수산 시장에서 불법 판매한 야생동물이 원인이라고 가리킨다”고 밝혔다. 2020년 1월 27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화난 수산 시장에서 채집한 환경 시료 33점 모두 코로나 양성 반응을 보였으며 2개를 빼면 모두 야생동물 매장에서 나왔다고 보도했다.

”코로나 진앙은 우한의 야생동물 시장”

중국 과학자들의 초기 발표는 지난달 26일 사이언스에 실린 두 논문과 정확히 일치한다. 미국 애리조나대의 마이클 워러비 교수와 스크립스 연구소의 크리스천 앤더슨 박사가 이끄는 국제 공동 연구진은 코로나 초기 우한에서 나온 확진자들이 화난 시장 주변에서 도심으로 퍼져간 것을 확인했다.

이와 함께 화난 시장 야생동물 판매 구역에 있는 우리와 운반 카트 등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인 시료도 확보했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박쥐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너구리가 2019년 11~12월 화난 수산 시장에서 식용이나 모피용으로 팔리는 과정에서 사람에게 코로나 바이러스가 옮았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중국 과학자들은 태도를 바꿨다. 해외 냉동식품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항체가 검출됐다는 점을 들어 중국에 수입된 냉동식품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또 화난 수산 시장의 환경 시료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왔지만 사람 유전자와 같이 검출됐다는 점에서 야생동물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코로나가 퍼졌다고 주장했다. 외국에서 온 감염자가 원인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2019년에 화난 수산 시장에서 야생동물이 산 채로 팔린 기록도 없다고 했다.

국제 과학계는 정면 반박했다. 호주 시드니대의 에드워드 홈스 교수가 2014년 찍은 사진과 2019년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올라온 사진에 화난 수산 시장 남서쪽에서 너구리와 말레이 호저, 붉은 여우 등 야생동물이 판매되는 모습이 포착됐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크리스 뉴먼 교수는 지난해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코로나 발생 2년 전 진드기 질병 연구차 우한을 현지 조사해 너구리와 사향고양이 등 야생동물 5만 마리가 화난 수산 시장 등에서 팔린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화난 시장에서 나온 유전자도 다른 동물 유전자 검출 사실은 빼고 사람 것만 발표했다는 지적이 논문 심사자에게서 나왔다. 냉동식품설은 검사 실수나 해석 오류 가능성으로 일축됐다.

과학 연구 막으면 더 큰 위기 닥칠 수도

중국 정부는 자국 과학자의 입단속에도 나섰다. 과기부는 관련 연구자가 언론과 접촉할 때 사전 허가를 받도록 했다. 옥스퍼드대의 뉴먼 교수와 같이 연구했던 중국 연구자는 소속 기관에서 연구 중단 지시까지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대의 휴즈 교수는 9년간 중국의 박쥐를 연구했지만 정부의 연구 허가를 받기가 어려워지자 지난해 12월 시솽반나 식물원을 떠났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새로운 코로나 대유행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국의 과학 공정은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중국이 제2, 제3의 코로나 진앙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의 비영리 연구 기관인 에코헬스 얼라이언스의 피터 다스작 박사는 지난 9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중국 남부와 미얀마 일부지역, 인도네시아 자바섬 등 아시아 동남부에서 연간 6만6000여 명이 이번 코로나와 유사한 바이러스에 감염된다”고 발표했다. 중간 숙주 동물을 통한 감염을 포함하면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사람은 더 늘 수 있다.

다스작 박사는 네이처에 “박쥐 바이러스 감염자는 대부분 증상 없이 지나가지만 이런 감염이 지속되면 결국 새로운 코로나 대유행을 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눈앞의 자국 이익만 따져 자유로운 과학 연구를 막으면 더 큰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