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블 우주망원경이 찍은 천체 사진 16장에 나타난 소행성의 궤적들. 파란색은 처음 포착된 궤적이고 붉은색은 가장 최근 망원경에 잡힌 모습이다./NASA, ESA

검은 우주 공간에 마치 도시의 네온사인처럼 파란색과 붉은색 곡선이 그어져 있다. 허블 우주망원경이 찍은 천체 사진 16장에서 소행성(小行星)이 지나간 흔적을 색으로 표시한 것이다. 파란색은 처음 포착된 궤적이고 붉은색은 가장 최근에 허블 우주망원경에 잡힌 모습이다.

독일 막스플랑크 우주물리학연구소의 산도르 크루크 박사 연구진은 지난 5일 국제 학술지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에 “전 세계 1만여 시민 과학자가 구글의 인공지능과 함께 지난 20년 동안 허블 우주망원경이 찍은 천체사진에서 소행성 1701개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소행성은 태양 주변을 긴 타원 궤도로 도는 작은 천체로, 태양계가 형성되던 시기에 생겼다. 망원경으로 우주의 한 지점을 30분 정도 촬영하고 있을 때 그 앞으로 소행성이 지나가면 천체사진에 선 모양의 궤적이 남는다. 크루크 박사는 “소행성의 궤도와 허블 망원경의 움직임 때문에 소행성의 궤적은 곡선 형태로 나타난다”며 “이런 궤적은 컴퓨터로 자동 분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05년 12월 5일 허블 우주망원경이 찍은 게성운 사진. 가운데 소행성 2001 SE101이 지나간 궤적이 보인다./NASA, ESA

과학자들은 천문학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지난 2019년 6월 30일 국제 소행성의 날을 맞아 과학자들은 ‘허블 소행성 사냥’이란 시민 과학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허블 우주망원경이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20년 동안 찍은 천체사진 3만7000여 장에서 소행성이 지나간 흔적을 눈으로 찾는 것이다. 그동안 1만1482명이 참여해 소행성 궤적 1488개를 찾아냈다.

연구진은 사람들이 찾은 소행성 궤적을 구글 인공지능에 학습시켰다. 인공지능은 이후 스스로 궤적 999개를 더 찾아내 소행성은 총 2487개로 늘어났다. 독일과 스페인, 루마니아 천문학자들은 시민 과학자와 인공지능의 탐색 결과를 분석해 최종적으로 1701개가 진짜 소행성이 남긴 궤적임을 확인했다. 이 중 1031개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소행성이었다.

크루크 박사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손잡고 대용량 정보를 탐색하는 것은 향후 우주 탐사의 판도를 바꿀 엄청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태양계 형성기의 잔재인 소행성을 통해 지구가 탄생하던 상황을 알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 연구진은 허블 우주망원경과 소행성의 상대적 위치를 토대로 새로 찾은 소행성의 궤도와 거리를 추가로 밝혀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