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탈레반 정부를 지지하는 여성들의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탈레반 전사들이 카불대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AP연합뉴스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20년 만에 재장악한지 한 달이 넘으면서 학계가 붕괴할 것이라는 국제 과학계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아프간 최고 대학 총장이 탈레반으로 바뀌고 수학 교수 자리에 이슬람 신학자가 임용되는 등 대학의 이슬람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탈레반 전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오래된 카불대 총장으로 취임하자 지난주 최소 70명의 교수가 사임했다”고 27일(현지 시각) 전했다.

카불대 신임 총장은 2008년 이 대학에서 언론학 학사 학위를 받은 모하마드 아쉬라프 가이라트이다. 지난주 약용식물 전문가로 오랫동안 카불대 교수로 재직한 모하마드 오스만 바부리 총장을 강제 사임시키고 새 총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이슬람 학습센터 소장으로 3년을 지낸 것을 포함해 15년간 탈레반으로 활동했다고 자랑했다.

가이라트는 총장에 취임하자마자 대학의 이슬람화를 천명했다. 그는 트위터에 “카불대에서 서구와 이단적 사고를 없애겠다”며 “남녀 학생 분리 정책으로 학내 매춘과 정신적 타락을 박멸하겠다”고 다짐했다. 카불대 학생 2만 명 중 거의 절반이 여학생이다.

가이라트는 또 트위터에 “더 많은 이슬람 학자를 카불대 교수로 뽑고 이란의 테헤란대와 파키스탄의 국제이슬람대와의 교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지난 27일 카불대 수학과 교수 자리에 이슬람 신학자를 임용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3월 고등교육부에서 열린 수력 발전과 농업 발달에 대한 과학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하마드 오스만 바부리 카불대 총장. 이번에 탈레반에 의해 강제 사임됐다./카불대

다른 대학도 사정은 비슷하다. 탈레반은 지난달 아프간 유명 대학인 칸다하르대와 파크티아대 총장도 탈레반 출신 인사로 바꿨다. 고등교육부 장관 대리도 탈레반이 차지했다. 하시브 파야브 전 아프간 국립 환경보호국 부국장은 사이언스에 “곧 아프간 모든 대학의 붕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탈레반이 아프간 대학들을 장악하면서 국제 학계와의 교류도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과거 카불대는 미국 애리조나대와 고고학 연구를 같이 했으며, 퍼듀대와는 농업과학 분야에서 협력했다. 파야브 부국장은 “탈레반은 과거 이슬람 교도가 과학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구 사회가 지적 암흑기에 있던 중세에 이슬람 세계가 과학 발전을 이끌었던 점을 가리켜 탈레반의 반과학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파야브 부국장은 사이언스에 카불대 교수 825명 중 최소 200명이 최근 아프간을 탈출했다고 밝혔다. 그 역시 이전 정부가 붕괴하자 아프간을 떠났다고 했다. 사이언스는 “탈레반이 카불대를 포함해 모둔 공립대학 교수와 공무원의 봉급을 50% 삭감하기로 결정하면서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교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