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찾은 꿀벌. 살충제에 중독되면 수면시간이 줄어 먹이를 제대로 구하지 못한다./미 농무부

꿀벌 개체 수가 급감한 원인에 살충제로 인한 불면증도 추가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수면 주기가 깨진 꿀벌은 한밤중에 먹이를 찾아 나서고 동료와도 의사소통을 제대로 못 해 생존까지 위협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브리스톨대의 제임스 호지 교수 연구진은 지난 21일 “살충제로 널리 쓰인 네오니코티노이드가 뒤영벌과 초파리의 수면 시간을 크게 줄였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날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와 ‘아이사이언스(iScience)’에 각각 살충제 성분이 곤충의 뇌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한 논문을 발표했다. 네오니코티노이드 성분이 뇌에 축적되면 뒤영벌과 초파리는 기억력이 손상될 뿐 아니라 밤과 낮을 구별하는 생체 시계도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지 교수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곤충도 수면의 질이 건강과 장기 기억 형성에 중요하다”며 “꿀벌도 뇌 구조가 같다는 점에서 살충제에 중독되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꽃이 어디 있는지 학습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꿀벌은 사람과 생체 주기가 같아 하루에 5~8시간 잠을 잔다. 사방이 어두워 꽃을 찾기 어려운 밤에는 꿀벌이 잠을 자야 하는데, 살충제 때문에 생체 주기가 손상되면 한밤중에 일어날 수 있다. 어두운 밤에 먹이를 제대로 구하지 못한 꿀벌은 생존이 힘들 수밖에 없다.

잠이 부족하면 동료와 의사소통도 줄어든다. 앞서 연구에서 잠을 못 잔 꿀벌은 꽃이 있는 곳을 알리는 춤도 덜 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동료가 꽃을 찾을 가능성도 낮아진다. 수면 부족에 빠진 꿀벌이 동료까지 위태롭게 한다는 말이다.

네오니코티노이드는 2017년 유럽에서 실시한 대규모 야외 실험을 통해 꿀벌을 떼죽음으로 내몬 주범으로 드러났다. 살충제에 노출된 꿀벌들은 날갯짓을 덜하고 꽃가루 수집량도 평소의 절반에 그쳤다. 살충제는 꿀벌이 애벌레도 알아보지 못하게 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유럽연합(EU)은 이듬해 4월 네오니코티노이드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브리스톨대 연구진은 “영국이 EU를 탈퇴했지만 네오니코티노이드 금지 정책은 지속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