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상계주공16단지 전용면적 59㎡ 5층이 지난달 4억원에 거래됐다. 같은 면적 6층이 9월 5억2500만원에 거래됐는데 두 달 만에 24% 떨어진 것이다. 2021년 8월 역대 최고인 7억원을 찍었던 이 아파트 실거래가는 올해 1월 4억2500만원까지 떨어졌지만,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와 9억원 이하 아파트에 저금리로 제공되는 ‘특례보금자리론’에 힘입어 2월부턴 서서히 회복되는 듯했다. 하지만 추석 이후 부동산 매수 심리가 다시 얼어붙으면서 올해 집값 회복분을 모두 반납했다. 4억원은 2020년 6월 수준 가격이다.

연말 부동산 시장이 다시 하락세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연초 회복하는 듯하던 아파트 거래량이 추석을 기점으로 다시 꺾였고, 실거래가 통계에서는 집값 하락세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17일 본지가 부동산R114에 의뢰해 올해 거래된 아파트 중 직전 분기와 비교 가능한 1만6615건을 전수 조사해 보니, 2분기 9.9%, 3분기 5.2% 올랐던 아파트값이 4분기엔 8.4%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집값이 비싼 지역은 4분기 아파트값이 떨어져도 1분기 대비 여전히 10% 가까이 높은 수준을 유지한 반면, 영끌족들의 주택 매수가 많았던 강북 일부 지역은 4분기에 거래된 아파트값이 1분기보다 낮아졌다. 단기간 집값 급등락이 반복되면서 주택 거래 경험과 자금력이 부족한 청년층과 저소득층에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픽=박상훈

◇15% 올랐던 서울 아파트값, 4분기 8.4% 급락

이번 조사에서 서울 아파트 평균 실거래가는 1분기 10억722만원에서 2분기 11억691만원, 3분기 11억6394만원으로 올랐다가 4분기 10억6665만원으로 떨어졌다. 실거래가 변동은 지역별로 편차가 컸다. 양천(28.1%), 송파(16.7%), 강남(14.9%), 광진(13.4%) 등 상대적으로 집값이 비싼 지역은 1분기 대비 여전히 10% 넘게 실거래가가 높았던 반면, 강북(-14.3%), 강서(-5.1%), 중랑(-2.6%), 노원(-1.9%) 등은 4분기 실거래가가 1분기보다 낮아졌다. 여경희 부동산R114 책임연구원은 “9월 말부터 6억원 초과 9억원 이하 주택 특례보금자리론이 중단되면서 해당 가격대 아파트가 많은 지역의 집값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며 “9억원 이하 아파트는 과거 2030세대의 ‘영끌 매수’가 많았는데, 이들이 원리금 상환 부담에 집을 급히 처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특례보금자리론이 일시적으로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는 효과는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더 많은 영끌족을 양산하고 자산 양극화를 심화시켰을 수 있다”며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향후 집값, 전셋값이 변수”

전문기관 통계에서도 집값 하락 분위기는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조사한 10월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지수는 전월 대비 0.08% 떨어지며 올해 들어 처음으로 하락 전환했다.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는 지난해 금리 인상 여파로 22.1% 하락했으나, 올해 1월부터 상승세로 돌아서 9월까지 누적 13.4% 올랐다. 집값의 선행지표로 통하는 거래량도 서울 아파트 기준으로 10월 2313건을 기록해 지난 1월(1412건) 이후 9개월 만에 가장 적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집값이 하락세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전셋값이 꾸준히 오르고 있어 작년과 같은 급락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지난해엔 서울 아파트 전세 실거래가도 5.72% 하락하면서 매매가격 하락을 부추겼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전셋값과 함께 분양가도 계속 오르고 있어 어느 시점이 되면 청약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기존 아파트 매매 수요를 다시 회복시킬 것”이라며 “이르면 내년 하반기쯤부터 금리 인하를 기다리던 매수 대기자들이 움직이면서 집값이 반등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