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대표 재건축 단지인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재건축 조합장을 선출하고 조합 설립에 속도를 낸다. 조합은 연내 조합설립 인가까지 마치겠다는 목표다. 재건축 추진위가 조합 설립에 나선 건 2003년 추진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20년 만이다.

서울 강남 대표 재건축 단지인 대치동 은마아파트. /박기람 기자

’강남 1세대 재건축’의 상징인 은마아파트가 재건축 조합 설립 결의를 완성하기까지는 유독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간 재건축 문을 수차례 두드렸지만, 정부 규제로 인해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특히 재건축 사업의 첫 관문이라고 부르는 ‘안전진단’부터 문턱이 높았다. 2002년 안전진단 단계에서 3번이나 떨어지고, 2010년이 되어서야 조건부 재건축이 가능한 D등급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안전진단을 통과하고 나서도 추진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2017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35층으로 층고를 제한하면서 49층으로 지으려던 계획이 무산됐다.

서울시 정비계획 심의에서 연달아 떨어지면서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다. 35층 이하 재건축 추진에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으로 갈린 것이다. 대립이 심화하면서 주민들을 대표하는 비대위가 여러 개로 쪼개졌고, 내분을 이어가다 결국 2021년에는 주민 총회에서 지도부 전체가 해임당하는 초유의 사태를 빚었다.

이후 오세훈 시장이 35층 규제를 폐지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당시 재건축 규제 완화를 공약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지난해 3월에는 은마 재건축 추진위 집행부가 새롭게 결성되면서 재건축 사업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서울 강남 재건축 단지인 은마아파트에서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C노선 통과를 반대하며 낸 현수막에 ‘故정주영 회장님은 손자교육 다시해라’라는 내용을 표기해 논란이 일었다. 논란이 확산하자 관할 구청에 제재 받은 은마 추진위는 곧바로 현수막을 제거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국토교통부와의 ‘악연’이 은마아파트에는 풀어야 할 또 하나의 큰 숙제로 남아있다. 수도권광역고속철도(GTX)-C 노선 은마 관통안을 두고 은마 주민들과 국토부의 갈등의 골이 좀처럼 봉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GTX-C노선은 경기 양주시 덕정역과 수원시 수원역 사이 74.2㎞를 연결하는 급행철도로 내년 착공을 목표로 한다.

문제는 GTX-C 구간인 삼성역과 양재역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은마 지하 약 60미터 깊이를 관통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주민들은 GTX가 아파트 단지 지하를 관통하면 지반 붕괴 위험이 있다면서 우회 노선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국토부는 관통 원안을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1월 원 장관은 C노선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과 함께 은마아파트를 찾아 직접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원 장관은 “수도권 교통난 해소를 위한 국가 사업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확산시키며 방해하고 선동하는 행동을 절대 용납할 수 없고, 이에 대해서는 행정조사권을 비롯해 국토부가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집 한 채의 만분의 일의 지분’을 가진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관계자의 근거 없는 선동 때문에 매일 서울로 출퇴근해야 하는 30만 수도권 주민의 발을 묶어 놓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원희룡 장관 페이스북

그러나 원 장관의 해명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추진위는 지난해 12월 아파트에 현수막을 내걸고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자택 앞에서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현수막에 포함된 자극적인 문구와 과도한 대처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후 여론이 악화하자 관할 지자체인 강남구청의 제재를 받고 즉시 철거했다.

이번 신임 조합장으로 임명된 최정희 조합장은 GTX-C은마 관통안을 두고 반대 시위를 주도,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공개 저격을 받기도 했다. 올해 1월 원 장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최 조합장의 은마 지분이 ‘만분의일’이라며 비난했고, 이후 최 조합장은 올 4월 은마 아파트 한 채를 매입하고 지분 51%를 확보해 조합장 선거에 출마했다.

최근에도 은마 아파트 재건축 추진위 관계자들이 검찰에 송치되면서 한 차례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지난달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 전현직 위원장이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의 합동조사를 통해 드러난 정보공개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이중 국토부·서울시·부동산원의 점검을 바탕으로 서울시가 수사 의뢰한 4가지 사건 중 나머지 3건은 모두 ‘혐의없음’으로 입건 전 조사 종결됐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국토부 등 합동 점검반이 ‘무리한 찍어누르기’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은마아파트 측의 GTX-C 노선 반대 집회가 이어지자 개통 차질을 우려해 이례적으로 조사에 나서 은마 재건축 추진위를 향한 압박을 가하기 위한 시도라는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