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고, 또 내리고 - 서울 시내 한 공인중개업소 게시판에 급매물 정보가 붙어있다. 정부가 서울 규제지역을 대부분 해제하고 청약 규제도 완화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났지만 주택 수요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이달 초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를 제외한 서울 전역을 규제 지역에서 해제하고 전매 제한, 실거주 의무 규제도 대거 완화하기로 했지만, 부동산 시장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해 들어 분양한 아파트 11곳 중 8곳이 경쟁률 1대1도 채우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으며, 이번 달 서울 아파트 값이 IMF 외환 위기 시절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는 민간 통계도 나왔다. 수도권 일부 지역 아파트는 실거래 가격이 직전 최고가의 절반 수준으로 급락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정부의 규제 완화 노력에도 금리 부담이 워낙 크기 때문에 수요가 회복되긴 어렵다”며 “당분간은 급매물 위주로 거래되는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새해 분양 단지 11곳 중 8곳 미달

새해 청약 시장은 혹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9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이달 청약을 진행한 단지 11곳(공공·민간) 중 8곳의 경쟁률이 1대1에도 못 미쳤다. 충남 서산 ‘서산 해미 이아에듀타운’은 80가구를 모집하는데 1순위에서 단 1명만 신청했고 2순위까지 더해도 신청자가 3명에 그쳤다. 인천 미추홀구 ‘인천석정 한신더휴’도 139가구 모집에 2순위까지 총 36명만 신청했다. 2886가구 규모 대단지인 경기 안양시 ‘평촌 센텀퍼스트’도 일반 분양 1150가구에 청약 신청은 350명뿐이었다. 지난해 전국 평균 청약 경쟁률 7.7대1에 비춰보면 심각한 상황이다.

새해 전국 주요 아파트 청약 결과

일부 단지에서는 분양권이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에 나오는 ‘마이너스 프리미엄’ 매물도 나왔다. 내년 1월 입주를 앞둔 서울 송파구 ‘송파 더플래티넘’ 전용 65㎡ 분양권은 분양가(14억5140만원)보다 1억5000만원 낮은 13억140만원에 매물로 나왔다. 이 단지는 작년 1월 분양 당시 29가구 모집에 7만5000여 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최근 집값이 급락하면서 주변 대단지 신축 아파트의 시세가 이 아파트 분양가 밑으로 떨어지자 매도를 고민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아파트 값, 25년來 최대 하락

이날 KB국민은행이 발표한 ‘월간 주택 가격 동향’에 따르면, 이번 달(16일 조사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월 대비 2.09% 하락했다. 규제지역 해제 조치에도 불구하고 지난달(-1.43%)보다 낙폭이 더 커진 것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때였던 2008년 12월(-1.64%)을 넘어 외환 위기 충격에 집값이 폭락한 1998년 5월(-3.72%) 이후 가장 폭이 큰 하락세다.

이달 5일부터 서울 21구와 경기 4곳(과천·성남·광명·하남)이 규제 지역에서 해제되면서 집값 급락세가 진정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이 조사한 주간 통계에서는 서울 아파트값 하락 폭이 이달 2일 -0.67%에서 23일 -0.26%로 축소됐다. 하지만 KB가 집계한 월간 통계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규제 완화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요즘처럼 주택 거래가 급감한 상황에서는 기관별로 통계값에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시장 전반의 침체 분위기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했다.

수도권 일부 단지에선 직전 최고가의 절반 수준에 거래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현대’ 전용면적 84㎡는 이달 5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2021년 9월 거래됐던 최고가(11억500만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경기 화성시 ‘동탄2하우스디더레이크’ 59㎡는 2021년 10월 매매가(8억9000만원)의 절반 수준인 4억5000만원에 이달 거래됐고, 인천 연수구 ‘송도 SK뷰’ 84㎡도 최고가(11억원)보다 46% 떨어진 5억9000만원에 매매가 이뤄졌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주택 시장 침체가 너무 가파르면 영끌족 투매나 깡통 전세, 건설사 도산이 이어지며 경제 전반의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며 “3주택 이상 다주택자에게 남아있는 세금 중과나 토지거래허가구역,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제 등 시장 정상화를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히 푸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