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8일 재건축 아파트 안전진단 때 구조 안전성 비율을 기존 50%에서 30%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한 규제 개선안을 발표했다. 서울에서만 노후 아파트 30만가구의 안전진단이 수월해질 전망이다. 사진은 최대 수혜 단지로 꼽히는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아파트 일대 모습. /남강호 기자

다음 달부터 노후 아파트 재건축을 위해 안전 진단을 받을 때 구조 안전성 배점 비율이 50%에서 30%로 낮아진다. 대신 주거 환경과 설비 노후도 평가 비율은 40%에서 60%로 오른다. 아파트가 당장 무너질 정도로 구조적인 문제가 심각하지 않아도 주차장 부족이나 녹물·층간 소음 때문에 생활에 불편함이 크다면 재건축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국토교통부는 8일 이런 내용을 담은 ‘재건축 안전 진단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재건축 사업의 첫 관문인 안전 진단 문턱을 낮춰서 도심에서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취지다. 입주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안전 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전국 151만여 가구가 이번 규제 완화의 혜택을 볼 전망이다.

◇안전진단 5년만에 문턱 낮춰… 전국 151만가구 혜택

재건축 안전 진단 기준 완화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국토부는 안전 진단 통과의 최대 걸림돌이던 구조 안전성 비율을 20%포인트(50%→30%) 내렸다. 2018년 3월 문재인 정부는 재건축 시장 과열을 막겠다며 안전 진단 때 구조 안전성 비율을 20%에서 50%로 올렸다. 이후 안전 진단을 신청한 아파트 상당수가 열악한 주거 여건에도 “붕괴 가능성이 작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고, 전국에서 신규 재건축 추진이 사실상 중단됐다.

구조 안전성 배점을 낮춘 대신 주차 공간과 층간 소음 같은 주민의 생활 만족도를 평가하는 주거 환경 분야 비율은 기존 15%에서 30%로 확대됐다. 아파트 단지의 배관·전기·환기·소방 시설 성능을 평가하는 설비 노후도 항목 비율도 25%에서 30%로 상향 조정됐다. 이에 따라 구조 안전성 비율이 대폭 강화된 2018년 3월 이후 안전 진단에서 재건축 불가 판정을 받았던 25개 단지 중 14곳도 바뀐 규정에 따라 재건축이 가능해진다.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았던 21개 단지 중 12곳은 즉시 재건축에 들어갈 수 있다.

◇ 구조 안전성 비율 30%로… 안전 진단 탈락한 14곳 통과 가능

정부는 안전 진단을 통과한 아파트 단지가 곧바로 재건축 사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총점’ 문턱도 대폭 낮췄다. 공공 기관의 적정성 평가와 재건축 시기 조정을 받아야 하는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는 총점 구간을 축소하고, 곧바로 재건축을 시작할 수 있는 범위를 확대했다. 기존에는 평가 항목별 점수를 합산해 총점이 30점 이하인 경우에만 즉시 재건축이 가능했는데, 앞으로는 45점 이하면 된다.

조건부 재건축 판정을 받은 단지에 의무적으로 적용되던 적정성 검토 절차는 관할 지자체장이 요청하는 경우에만 받는 것으로 바뀐다. 통상 적정성 검토는 1500가구 단지 기준으로 1억원 안팎의 비용이 발생하고 시간도 7개월이나 걸려 재건축 추진 아파트 주민에겐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목동·상계동 등 서울 30만 가구 수혜

안전 진단 규제 완화로 재건축을 망설이던 아파트 단지의 사업 추진이 대거 늘어날 전망이다. 아파트가 지어진 지 30년이 지나면 안전 진단을 신청할 수 있는데, 전국적으로 30년 차 이상 아파트 단지(200가구 이상)는 2687곳, 151만 가구에 달한다. 국토부는 새로 안전 진단을 추진하는 단지는 물론, 2차 정밀 안전 진단 단계에서 탈락했거나 현재 안전 진단을 받는 단지에도 개선안을 소급 적용하기로 했다.

안전 진단 기준 완화로 재건축 추진 가능한 아파트

서울만 따져보면 안전 진단을 받을 수 있는 아파트가 총 389개 단지, 30만4862가구이다. 부동산 시장에선 14개 단지, 2만6629가구 규모의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아파트를 최대 수혜 단지로 꼽는다. 1985년부터 입주를 시작한 목동신시가지 아파트는 안전 진단을 최종 통과한 6단지를 뺀 13개 단지가 안전 진단에 발목이 잡혀 재건축이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1987~89년 입주한 노원구 상계주공아파트도 재건축 추진에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상계주공은 15개 단지 중 5단지만 안전 진단을 최종 통과한 상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안전 진단 완화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침체한 주택 시장 분위기가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임병철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고금리 여파로 아파트 매수 심리가 극도로 위축돼 있어 재건축 아파트 값이 들썩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안전 진단 완화에도 재건축 추진 단지가 급격히 늘어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전문위원은 “재건축 첫 관문인 안전 진단 통과가 쉬워진 것은 틀림없지만,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제와 분양가 상한제도 적극적으로 규제를 완화해야 가시적인 공급 확대 성과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 진단 규제 완화는 법 개정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는 이달 행정 예고를 거쳐 새해부터 바로 적용할 계획이다. 권혁진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안전 진단이 인위적인 재건축 규제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기준을 합리화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