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 여파로 주택시장이 침체하면서 지난달 서울에서 팔린 아파트 10채 중 8채는 이전 최고가보다 가격이 내린 ‘하락 거래’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단지에선 이전 대비 5억원 이상 급락한 매매 계약도 나왔다. 매수 수요 실종으로 거래 자체가 잘 안 되는 상황에서 아파트 처분이 급한 매도자들이 경쟁적으로 호가를 내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지난 27일 규제지역에서 1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늘리고,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도 허용하기로 결정하면서 주택시장에서 매수 수요가 되살아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는 “금리도 워낙 높고, 집값이 더 내릴 것으로 보는 심리가 팽배해 당장 수요가 회복되거나 집값이 반등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서울 아파트 80%가 하락 거래

30일 부동산 정보업체 직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9월 서울에서 거래된 513개 타입의 아파트 중 22.4%(115개)가 최고가 거래로 조사됐다. 이 비율은 같은 단지, 같은 면적 아파트가 직전 최고가와 같거나 비싼 가격에 팔린 거래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 10건 중 8건은 이전보다 싸게 팔렸다는 뜻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시중 금리가 오르면서 서울에서 아파트 최고가 거래 비율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작년 7~8월만 해도 70%를 웃돌던 것이 10월(64.2%) 70% 밑으로 떨어졌고, 올 상반기엔 40%대로 내려앉았다. 올해 하반기부터 대출 금리가 본격적으로 오르면서 7월(32.9%)과 8월(25.1%)에 이어 9월에 간신히 20%대를 기록했다.

서울 인기 주거지나 유망 재건축 단지에서도 이전보다 수억원 내린 ‘급락 거래’가 속출하고 있다. 송파구 신천동 ‘파크리오’ 전용 144㎡는 지난 4일 이전 최고가(33억원)보다 8억원 내린 25억원에 팔렸다. 강남권 대표 재건축 단지 중 하나인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 전용 81㎡는 지난 18일 24억4100만원에 매매 계약을 맺었다. 직전 최고가(29억5000만원)보다 5억원가량 낮은 가격이다.

◇대출규제 풀려도 수요 회복 쉽지 않아

정부는 주택 경기 경착륙을 막기 위해 지난 27일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대규모 대출 규제 완화 방안을 발표했다. 특히 15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 금지 규제를 풀기로 한 것에 대해 “잠실·목동 등 규제 때문에 수요가 눌렸던 지역에 호재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조금만 대출을 받으면 집을 옮길 수 있는데 15억원 대출 규제 때문에 움직이지 못했던 사람들이 갈아타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 전문위원은 “중도금 대출 규제 완화로 입지가 좋은 지역은 청약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출 심사 때 개인의 모든 금융 부채 원리금을 연간 소득과 비교하는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가 남아있어 고소득자가 아니면 대출 한도가 대폭 늘어나긴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다 시중 금리가 워낙 높아 집을 사들이는 수요가 단기간에 늘어나긴 어렵다는 분석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이번 대출 규제 완화는 거래 침체로 인해 주거지를 옮겨야 하는 실수요자나 청약 대기자의 부담을 낮추려는 의도”라며 “당장 주택 매수 수요가 급증하면서 집값이 다시 오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양지영 R&C 연구원장은 “금리 추가 인상에 따른 부담과 정부의 대규모 주택 공급을 기다리는 청약 대기 수요로 인해 거래 절벽 상황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