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마아파트의 재건축 후 조감도./서울시

서울의 대표 노후 대단지 아파트인 은마아파트가 재건축 추진 약 20년 만에 서울시 심의를 통과하면서 강남권 중심으로 정비 사업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강남에서도 인기 주거지로 통하는 대치동에서 5000가구가 넘는 대규모 신축 단지가 공급되면, 주변 아파트 시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전·월세 부담 완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은마아파트를 기점으로 지난 정부 때 사실상 ‘올스톱’ 상태였던 서울 재건축 시장이 활기를 띨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최근 주택 경기가 침체 국면인 데다가 초과이익 환수제, 분양가 상한제 등 재건축 사업 활성화를 가로막는 규제 완화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실제 입주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

◇ 35층 5778가구로 탈바꿈…초과이익환수제등 규제 여전해, 실제 입주까진 시간 꽤 걸릴 지도

지금까지 은마아파트 소유자에게 재건축 사업은 ‘희망고문’이나 마찬가지였다. 2003년 재건축추진위원회를 설립하고 20년이 다 되도록 초기 행정 절차인 정비계획조차 확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0년 안전진단을 통과하기까지 3차례 고배를 마셨고, 2017년 국제 공모를 통해 마련한 ‘49층 설계안’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주도의 ‘35층 규제’에 막혀 백지화됐다. 재건축이 기약 없이 밀리면서 소유주 간 갈등도 커져 작년 9월 추진위원회 집행부가 해임되는 내홍(內訌)도 겪었다.

재건축 추진위 집행부가 해임되고서 여러 비상대책위원회가 난립하며 재건축이 지지부진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올해 3월 새 집행부가 결성됐고, 7개월 만에 수정한 정비계획안이 서울시 심의를 통과했다. 최정희 추진위원장은 “재건축이 더 늦어져선 안 된다는 판단에 서울시 요구 사항을 합리적인 선에서 최대한 수용하면서 협의를 진행했다”며 “주민들이 그동안 많이 힘들어했는데, 곧바로 조합 설립 등 후속 절차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막혔던 강남 재건축, 물꼬 트이나

서울 재건축 시장의 ‘대장주’ 중 하나인 은마아파트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다른 지역 재건축 단지도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은마아파트가 서울시 심의를 통과했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며 “정부와 서울시가 재건축 활성화 의지를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여의도·목동·압구정동 등 재건축을 준비 중인 단지 주민들에게 심리적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강남권 재건축이 활발해지면 투기 수요를 자극해 집값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 부동산 전문가들은 긍정적 효과가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특정 단지의 재건축만 속도가 빨라진다면 수요가 몰릴 수 있겠지만, 서울 재건축 시장 전반이 활성화된다면 공급 확대를 통한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초과이익 환수제와 분양가 상한제 같은 지난 정부가 만든 규제가 아직 남아 있어 은마아파트를 비롯한 재건축 단지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지난달 초과이익 환수제 완화 방안을 내놨지만, 국회 통과가 미지수이고 장기 보유 1주택자에게 혜택이 집중돼 조합원 간 갈등을 부추길 우려도 있다. 또한 최근 원자재 값과 인건비가 급등한 상황에서 분양가 상한제에 활용하는 기본형 건축비는 공사비 상승분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운 것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는 “최근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우려 때문에 주택 시장이 침체 국면에 접어들고 있어 재건축 단지마다 고민이 많다”며 “기대했던 것보다 사업 추진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고, 실물 경기가 더 나빠지면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 흥행도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