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식 수목건축 대표가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와 설계를 맡아 사업을 진행했던 서울 서초구의 역세권 소형 주거시설 '심플리시티' 외관. /수목건축
이 주거시설 내부에는 공유오피스 등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을 넣어 인기가 높다. /수목건축

“서울시내 역세권 땅은 워낙 비싸 과감한 혜택을 주지 않으면 정비사업을 통한 주택 공급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규모가 작을수록 땅주인 한 두 명만 반대해도 사업이 좌초되기 쉽죠. 황금 입지에 정비사업으로 질 좋은 공동주택을 공급하려면 그만큼 파격적인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합니다.”

최근 부동산 시장 최대 이슈 중 하나가 바로 서울 도심 주택 공급 확대다.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도 다양한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도심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정책 중 하나가 바로 소규모 정비사업, 특히 소규모 재개발 사업이라고 본다.

문제는 정부 의지와 달리 소규모 재개발에 여전히 장애물이 많다는 것. 소규모 주택·정비사업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잔뼈가 굵은 서용식<사진> 수목건축 대표는 “정부와 서울시가 사업 추진 발판은 마련했지만 현실적 한계가 많다”며 “각종 심의·인허가 절차를 대폭 줄여 리스크와 비용을 최소화해야 빠른 시간 내 주택 공급을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용식 수목건축 대표

서 대표는 25년여 동안 도시형생활주택, 역세권청년주택 등 300여개 주택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서울시 가로주택정비사업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하고, 자율주택정비사업 국내 1호인 ‘옐로우 트레인’을 론칭한 국내 소규모 주택개발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땅집고가 서 대표를 만나 소규모 재개발 사업 활성화 해법을 들어봤다.

-소규모 재개발 사업이 활발하지 않은 이유는.

“사업 취지는 좋은데 실제 주택 공급으로 이어지기엔 현실적 장벽이 너무 많다. 정부가 작년 2·4대책에서 제시한 소규모 재개발은 지구지정 요건부터 까다롭다. ▲철도역 350m 이내 ▲면적 5000㎡ 미만 ▲노후·불량 건축물의 수가 전체 건축물의 3분의 2 이상 ▲폭 4m 8m 이상 도로 접도 등 4개 요건을 모두 만족해야 한다. 역세권 5000㎡ 미만 사업 부지 중 이런 조건을 충족한 곳을 찾기가 정말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주민 동의다. 소규모 사업지는 현실적으로 단 한 명만 반대해도 사업이 무산된다. 역세권 노른자 땅은 말할 것도 없다. 현행 법은 토지등소유자 4분의 1 이상이 동의하면 사업시행예정구역 지정을 제안할 수 있다. 이후 1년 이내에 토지등소유자 5분의4(면적기준 3분의2) 동의를 받아 사업시행구역으로 확정하게 된다. 동의율 25%를 확보해 사업을 시작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런데 지구지정 확정 요건인 80% 주민 동의를 받아도 잔여 부지 확보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빠른 시간에 토지 수용이 가능하도록 행정 조치와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업 시행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규제 완화가 더 필요하다는 것인가.

“지난 5일 국토교통부가 규제혁신심의 과정에서 소규모 주택정비사업지에서 보유 5년·거주3년인 조합원에 한해 조합원 지위 양도를 허용한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일단 도로 기준부터 풀어야 한다. 폭 8m 이상 도로 한 면만 접해도 사업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토지주들이 사업시행예정구역 지정을 제안하면 최대한 빨리 확정하는 행정 절차도 필요하다. 토지등소유자에게 초기 사업비 지원 같은 과감한 금융 혜택도 줘야 한다. 일단 사업이 무산되지 않고 추진할 발판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심의도 지나치게 까다롭다. 금지된 규제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이 필요하다.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예측 가능한 인허가 조건을 만든 후 실제 심의 과정에서는 논란이 있는 부분만 조건부로 통과시키면 된다.”

-또 다른 제안이 있다면.

“소규모 재개발로 들어선 아파트는 사업 부지가 5000㎡ 미만이라 대부분 한 동짜리 나 홀로 아파트가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공공기여 방식을 다양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단순히 임대주택, 임대상가에 국한하지 말고 일정 부분을 커뮤니티 공간이나 지역에 필요한 주민센터, 작은도서관 등으로 제공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입주자나 인근 주민 주거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시설과 공간도 공공기여로 해석해야 한다. 좋은 입지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개발에 따른 현실적 제약이 있는 만큼 입주자 만족도를 높일 다양한 방법이 마련돼야 한다.”

소규모 재개발사업이란?

노후·불량 건축물 밀집 등 일정 요건에 해당하는 지역 또는 가로구역에서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시행하는 사업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2·4부동산 대책에서 새로 도입했다.

새 건물과 낡은 건물이 섞여 있어 대규모 개발이 어려운 주거지역 또는 준공업지역의 5000㎡ 미만 소규모 부지가 대상으로 용적률을 높여줘 고밀 개발이 가능하도록 했다. 토지등소유자 4분의 1 이상이 동의하면 예정구역 지정 제안이 가능하다.

2·3종 일반주거지역에 대해 최대 준주거지역(최대 용적률 700%)까지 용도를 올려준다. 다만, 늘어나는 용적률의 50%는 신혼부부·사회 초년생 등을 위한 공공임대 주택이나 영세 상인 보호를 위한 공공임대 상가로 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