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가까운 입지, 잘 갖춰진 교통망과 주민 편의 시설 등 하드웨어 측면에서 1기 신도시는 여전히 수도권에서 인기가 높은 주거지다. 하지만 1980년대에 계획된 ‘구식 도시’인 탓에 주거 환경은 요즘 주택 수요자의 눈높이에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주택 노후화에 따른 층간 소음, 녹물, 주차 공간 부족 등의 불편이 가중되면서 재건축·리모델링을 요구하는 주민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입주를 앞둔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서 진행된 층간 소음 측정 실험. 앞으로 아파트를 지은 후 실제 집에서 층간 소음 차단 성능을 확인하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건설사들이 전담 연구팀을 만들고 특허를 내는 등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대건설

분당의 한 주민은 “4년 전 천장에서 물이 새 공사를 했는데, 작년 여름 다시 누수로 살림살이가 다 망가졌다”고 했고, 일산 백석동의 한 주민은 “오후 8시만 넘어도 단지에 주차할 곳이 없어 전쟁이 벌어진다”고 했다. 직장이 경기도 파주에 있어 일산에 산다는 안모(45)씨는 “층간 소음 때문에 이사를 3번이나 했는데, 30년 다 된 아파트뿐이어서 어딜 가든 마찬가지”라고 했다.

2019년 경기연구원이 1기 신도시 주민을 상대로 한 만족도 조사에서 주차장(53.6%)과 소음·진동(40.5%)에 대한 불만이 특히 많았다. 30여 년 전 자동차 보급 상황에 맞춰 아파트를 지은 탓에 일부 단지는 가구당 주차 대수가 0.5대도 안 된다. 중소 평형 위주로 지은 아파트 단지의 주차난이 특히 심각하다.

1991년부터 입주한 1기 신도시 아파트는 바닥이 얇아 층간 소음에도 취약하다. 1999년 이전에 지은 아파트는 바닥 두께 기준이 120㎜로 현행 규정(210㎜)의 절반 수준이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1기 신도시는 단기간에 수십만 가구의 아파트를 동시다발적으로 짓는 프로젝트였고, 당시 건설 기술도 그리 뛰어나지 않아서 ‘날림 시공’도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1기 신도시의 재건축·리모델링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분당 한솔마을 5단지는 작년 2월 리모델링 사업계획 승인을 받았고, 평촌의 목련 2·3단지는 지난해 리모델링 건축 심의를 통과했다. 분당에선 최근 삼성한신, 우성, 한양, 현대 등 시범단지를 중심으로 19개 단지가 ‘분당 재건축 연합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재건축이든 리모델링이든 현실적인 대안을 세워 1기 신도시의 낙후된 주거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박사는 “개별 단지가 산발적으로 재건축·리모델링을 추진할 게 아니라 도시 전체의 기능 향상 관점에서 정비 수단을 모색해야 한다”며 “다만 개발 이익 환수나 전세시장 불안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