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경기도 하남시 학암동 ‘위례호반써밋’ 아파트 발코니엔 ‘기습 분양’ ‘따블 장사’ 같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수십 개 붙어 있었다. 699가구 규모로 올해 2월 입주한 이 단지는 4년간 임대료를 내면서 살다가 분양 여부를 정할 수 있는 민간 임대 아파트다. 그런데 임대 사업자인 호반산업이 입주 9개월 만에 ‘조기 분양’을 추진하자 이에 반대하는 입주민들이 현수막을 내건 것이다. 입주민들은 “보증금을 수억원 내고 입주해서 1년도 안 살았는데 단기간에 어떻게 5억~9억원을 더 마련하느냐” “분양가가 너무 비싸다”고 반발하고 있다. 또한 조기 분양을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끼리 갈등도 심해지고 있다.

이 아파트가 조기 분양 내분에 휩싸인 배경엔 법인 종합부동산세를 대폭 올리고, 4년 단기 임대 사업을 폐지한 작년 7월 ‘7·10 부동산 대책’이 있다. 다주택자를 규제하기 위한 단기 임대 폐지로 호반 같은 임대 사업자가 의무 임대 기간을 채우지 않고도 분양 전환할 길이 열린 것이다.

위례 호반써밋에 내걸린 현수막 - 지난 8일 경기도 하남시 위례 호반써밋 아파트 발코니에 조기 분양 전환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입주민들은 "입주 9개월 만에 최대 10억원을 내고 분양받으라는 것은 민간 임대 취지에 어긋난다"고 반발하고 있다. 호반산업 측은 "일부 입주민의 요구가 있었고 종부세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연정 객원기자

◇“종부세만 수백억원, 임대 못 한다”

호반산업은 “정부 정책으로 종부세가 수백억원 나와서 어쩔 수 없다”며 “9일 마감 결과 전체 가구의 29%가 조기 분양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호반산업은 이 단지 임대 아파트 699가구에 대한 종부세로 올해 402억원을 내야 한다. 처음 아파트를 공급한 2017년 예상했던 종부세(77억원)의 5배가 넘는 액수다. 호반산업 관계자는 “공시가격이 오른 데다가 종부세율까지 급등했다”며 “4년간 세금을 수천억원 내고는 임대 사업을 영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19년 말 입주한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고급 아파트 ‘나인원한남’도 애초 ‘4년 임대 후 분양’ 방식으로 공급했지만, 종부세 부담 때문에 올해 3월 조기 분양했다. 단지 시행사인 디에스한남은 2020년 재산세와 종부세로 450억원을 냈는데 올해는 종부세 강화로 추가 세금 부담이 700억원에 이를 것으로 판단했다. “세금 때문에 적자가 날 수도 있다”며 조기 분양을 단행했고, 이 과정에서 일부 입주민이 분양 전환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갈등을 빚었다.

정부는 작년 7·10 대책에서 법인에 대한 종부세율을 최고 3.2%에서 6%로 올렸고, 종부세 기본 공제(6억원)도 없앴다. 취득세율도 12%로 대폭 끌어올렸다. 또한 임대 사업자에 대한 혜택을 줄이는 과정에서 4년 단기 임대 사업을 폐지하고, 대신 의무 임대 기간의 절반을 채우지 않고도 주택을 조기에 처분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조치가 결국은 종부세 부담을 덜려는 임대 사업자와 조기 분양을 반대하는 입주자 간 갈등을 낳은 것이다.

◇“기업의 임대주택 공급 위축될 것”

국토부에 따르면, 민간이 공급한 건설형 단기 임대주택은 전국에 1만2351가구가 있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민간 임대 아파트 중 상당수가 조기 분양을 고려하는 중”이라며 “법인에 대한 과도한 종부세가 민간이 공급하는 양질 임대주택을 줄여 세입자의 주거 불안을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종부세 합산 배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중대형 임대 아파트를 공급한 민간 사업자의 세금 고민도 만만치 않다. 경기도에서 10년 장기 임대주택을 운영하는 A사는 작년 51억원이던 종부세가 올해는 118억원으로 뛰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내년엔 종부세가 더 늘어날 텐데 10년 임대라 사업자 말소도 안 되고, 당장 분양 전환도 할 수 없어 해마다 세금을 내며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임대 사업자가 세금 부담에 허덕이는 가운데, 일부 수요자는 임대주택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투기 수단으로 삼아 문제가 되고 있다. 임대주택 청약에 당첨된 입주자는 재산세, 취득세, 양도세 등 세금을 물지 않는데, 수요가 많은 인기 단지는 웃돈을 받고 전매(轉賣)가 가능하다. 최근 당첨자를 뽑은 경기도 용인 ‘수지구청역 롯데캐슬 하이브 엘’과 ‘도봉 롯데캐슬 골든파크’ 등은 웃돈이 많게는 2억원 붙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 대신 민간 기업을 통해 임대주택을 공급해놓고 세금으로 수익을 환수하면 어떤 민간 기업도 임대주택 사업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며 “실수요자는 보호하고 투기는 차단해야 하는데 엉뚱한 규제로 실수요자의 주거 불안만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