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7일 청약을 진행하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공사 현장.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10억원 이상 저렴해 ‘로또 청약’으로 불리지만 분양가가 워낙 높아 중도금 대출은 물론 잔금 대출까지 사실상 불가능해 현금 부자들만의 경쟁이 될 전망이다. /장련성 기자

올해 1월 분양한 경기도 성남 ‘판교밸리자이’ 오피스텔은 전용면적 84㎡ 분양가가 10억원이 넘어 “지나치게 비싸다”는 불만이 나왔다. 그런데도 282실 모집에 6만5503명이 몰리며 평균 232대1의 경쟁률로 마감됐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 들어 집값이 계속 치솟고 아파트 청약 당첨이 ‘바늘구멍’ 통과하기가 되자 비슷한 면적의 오피스텔이라도 사는 게 낫다는 수요가 몰린 결과”라고 해석했다.

◇아파트 분양가 통제의 역설

아파트와 오피스텔의 분양가 역전은 정부의 인위적인 가격 통제가 초래한 결과다. 아파트 분양가가 주변 시세에 비해 턱없이 낮게 책정되면서 건설업계는 오피스텔로 몰리는 절박한 실수요를 활용해 이익을 내고 있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아파트 분양가를 통제하니 오피스텔이나 도시형 생활주택 같은 대체 상품으로 이익을 보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분양 대행사 대표는 “예전엔 미분양이 두려워 오피스텔 분양가를 높게 책정하지 못했지만 최근엔 ‘비싸게 내놔도 팔린다’는 인식이 퍼졌다”고 말했다.

같은 단지 아파트보다 비싼 오피스텔 분양가

정부의 분양가 규제가 서울 도심에 원활한 주택 공급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분양가를 둘러싼 시행사·조합원들과 행정기관 간 갈등이 장기화돼 신규 분양이 지체되는 일이 빈번한 것이다. 서울 중구 ‘힐스테이트세운센트럴’은 작년 8월 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는 도시형 생활주택 487가구를 먼저 분양한 후, 아파트 535가구는 아직 분양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시행사는 지자체가 정한 분양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1만2000가구가 넘는 서울 최대 재건축 사업장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도 2017년 이주 후 4년이 지나도록 분양가 합의가 안 돼 공급이 지연되고 있다.

◇청약 광풍 속 현금 부자에게만 기회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는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 부담을 덜고, 인근 지역 집값까지 낮추겠다는 목적으로 작년 하반기 부활했다. 하지만 정부의 인위적인 규제로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수억원 낮게 책정되다 보니 전국적으로 ‘청약 광풍’이 불었고, 아파트와 오피스텔 간 가격 역전 현상이 나타나는 부작용도 속출했다.

서울 강남권처럼 아파트값이 비싼 곳에선 청약을 통해 현금 부자만 이득을 본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달 17일 청약을 받는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분양가는 9억500만~17억2000만원이다. 가장 작은 평형도 9억원을 넘어 중도금 대출이 되지 않고, 입주할 때 시세가 ‘대출 금지 기준’인 15억원을 넘을 가능성이 커 잔금 대출도 불가능할 전망이다. ’10억원짜리 로또'로 불리지만, 대출 없이 돈을 마련할 수 있는 현금 부자만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셈이다.

대한부동산학회장인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분양가 상한제 도입 이후 일부 아파트 분양가는 낮아진 반면 주택 공급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났다”며 “현실적인 분양가를 책정하면서 채권입찰제 등을 통해 시세 차익 일부를 회수해 주거복지에 쓰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