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학봉 기자의 ‘팬데믹 주택 버블’ 연구 - ⑧ 독일, 임대주택 천국의 추락

2019년 독일 베를린 시민들이 임대료 폭등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85%의 시민들이 임대에 사는 베를린은 임대료 폭등에 대한 시민들의 항의가 커지자 임대료를 5년간 동결하는 대책을 2020년부터 도입했다. 임대료는 하락했지만, 매물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OECD 국가 중 장기간 집값이 가장 안정된 국가’, ‘안심하고 장기 거주할 수 있는 세입자의 천국'

한국에서 독일은 주택정책의 모범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주택정책을 총괄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2017년이 쓴 ‘꿈의 주택정책을 찾아서’라는 책에서 독일에 대해 ‘OECD 국가 중 장기간 집값이 안정된 예외국가’, ‘자가 가구보다 임차가구가 더 많은 임차인 사회’ 라고 평가했다. 2000년대 유럽국가들의 자가 보유율이 60~70%였지만 독일은 자가보유율이 40%대에 그칠 정도로 민간 임대주택시장이 발달했다. 대통령과 장관들, 여당 정치인들이 강조했던 ‘집 구입할 필요 없는 사회’ 의 모델중 하나가 독일이다.

그런데 그건 옛이야기일 뿐이다. 가장 안정적인 시장이었던 독일은 2010년대 유럽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주택가격과 임대료가 치솟았다. 특히 임대 거주 비율이 85%나 되는 베를린에서는 공산주의로 역행한다는 비판까지 받으며 ‘임대료 동결’ 이라는 초강력 대책이 등장했다. 한때 찬사를 받던 임대위주의 주택정책은 자산불평등과 주택난을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독일, 지난 10년 가장 빠르게 주택매매가와 임대료 상승

2000년대까지 안정세를 보이던 독일 집값은 2010년이후 10년간 강한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독일의 대도시는 지난 10년간 세계에서 집값이 가장 빠르게 상승했다. 베를린, 함부르크, 뒤셀도르프, 쾰른, 뮌헨, 프랑크푸르트, 슈투트가르트 등 독일의 ‘빅7’ 도시에서는 2009년부터 2019년까지 기존 주택의 집값이 평균 123.7% 올랐다고 도이치뱅크는 밝혔다. 가장 낮은 상승률을 기록한 뒤셀도르프가 97%였고,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기록한 도시는 뮌헨으로, 178%였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0년간 런던의 평균 집값은 같은 기간 66% 올랐고, 뉴욕 맨해튼은 약 30% 올랐다”면서 “독일의 집값이 세계 주요 국가중에 가장 많이 올랐다”고 보도했다.


시민의 85%가 임대주택에서 거주하는 베를린은 지난 10년간 주택 매매 가격은 3배로, 임대료는 2배 이상 뛰었다. 집값이 급등하면서 베를린에서 자기집을 가진 15%만이 집값 상승의 혜택을 보고 나머지 시민들은 고통을 겪고 있다. 결국 베를린 시 정부는 임대료 동결정책을 도입했지만, 임대매물 부족에 따른 효과논란과 위헌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독일은 뒤늦게 내 집 마련 열풍이 불면서 자가보유율도 50%를 돌파했다. 도이치뱅크는 보고서를 통해 2022년까지 독일 주택가격 상승세를 전망했다.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주택 공급과 저금리로 인한 주택 담보 대출 증가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독일을 자산 불평등 국가로 만든 임대주택 정책

독일은 지난 10년간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등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유럽에서 ‘자산 편중’ 문제가 가장 심각한 나라가 됐다. 독일 경제연구소(DIW)의 발표에 따르면 독일에서 가장 부유한 1%가 전체 자산의 35%를 소유하고 있다. 상위 10%는 독일 전체 자산의 66%를 소유하고 있다. 하위 50%는 전체 자산의 1.3%를 소유하는데 그쳤다. 2017년 OECD 통계에서도 독일의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60%를 소유, OECD 평균(52%)보다 자산 불평등이 심하다. 독일의 작년 순자산 지니계수(net asset Gini coefficient)는 0.81이다. 이 숫자가 ‘0’이라면, 완전 평등하고 ‘1’이라면 완전한 불평등을 의미한다. 독일의 가처분 소득 지니 계수는 0.29로, OECD 평균(0.32)보다 낮은 모범국가이다. 연금, 세제 등을 통해 정부가 효과적으로 임금소득을 재분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독일에서 왜 자산편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일까?

임대위주의 주택정책이 자산편중을 심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다른 선진국과 달리, 세제혜택, 대출지원 등 자가보유를 촉진하는 정책을 쓰지 않아 저소득층은 주택을 소유하기가 어렵다. 정부 정책을 믿고 내 집 마련을 하지 않은 채 임대 주택에서 월세를 열심히 내다가 임대료와 집값이 급등, 저소득층은 자산 축적 기회조차 없어진 것이다. 가격 상승기에는 주택을 소유한 상위층만 자산가격 상승의 혜택을 본다. 레오 카스와 게오르기 코하코프 등이 발표한 ‘독일의 자가보유율이 낮은 이유들’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독일의 낮은 자가보율은 독일 정부가 임대주택을 권장하는 정책의 결과이며 만일 자가보유율을 높이는 정책을 택했다면 자산의 불평등을 줄이는데 기여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입자 보호 강력한 법률, 공급 부족하면 백약이 무효

독일 정부는 다른 유럽 국가와 달리, 2차세계대전후부터 자가 보유보다는 민간 임대주택 위주의 정책을 발전시켰다. 이 때문에 독일은 법적으로 임차인 보호가 가장 강력한 국가로 꼽힌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주택 임대차 계약은 원칙적으로 무기한 계약이다. 하지만, 임차인 퇴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집주인이나 직계가족이 거주하거나 재산의 적절한 경제적 처분을 하지 못해 경제적 손실을 크게 볼 경우에는 재계약을 거절할 수 있다. 세입자가 거부하면 재판에서 다퉈야 한다. 매각이나 임대료 인상만을 위한 계약거절은 불가능하다.

법원도 임차인 보호에 적극적이다. 독일 베를린 지방법원은 한 집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고령 세입자에게 임대인이 제기한 ‘자가사용을 위한 임대계약 해지 소송’에 관해, 임대계약을 해지하면 임차인이 민법상의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기각했다.

임대료 인상도 제한적이다. 민법에 따라 임대료 인상에 임차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3개월 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일방적인 임대료 인상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의미이다. 임대료는 3년 동안 20%를 초과할 수 없다. 특히 2014년 법 개정을 통해 주택공급이 부족한 인구과밀지역에 대해서는 인상을 3년간 15%로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베를린, 바이에른, 헤센, 노르트-베스트팔렌 주 등이 적용 대상이다. 2015년 6월 주요 도시에서 월세 제동책(the rent brake)이 도입됐다. 2년마다 위치, 크기, 설비, 친환경설비 등, 소음, 교통시설 등 고려한 임대료 기준표를 만들어서 신규 계약자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택 임대료의 10% 이상을 초과해서 계약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인상률 제한은 ▲새로 건축된 주택 ▲리모델링한 주택 등은 예외이다. 임대사업자들이 독일 정부가 적극적으로 권하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리모델링을 명분으로 임대료를 올리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강력한 세입자 보호 장치와 임대료 통제 장치가 있어도 그것이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주택공급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 독일에서 10년간 임대료가 급등한 것은 물량자체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의 통제 정책이 단기적으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어도 주택공급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장기적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세제혜택 주지 않고 거래세 높여 서민들에게 임대를 권유한 정부

독일 국민이 자가보다 임대를 선택했던 이유는 뭘까. 첫째, 정부가 자가보유보다 임대주택에 대해 인센티브를 줬기 때문이다. 1987년 이후 자기거주 주택의 모기지(주택담보대출) 대출 이자는 소득세 공제 대상이 되지 않지만 임대 주택에 대한 모기지 대출 이자는 임대 소득세 부과에서 공제된다. 민간임대사업자가 개인이 80% 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법인이다. 부동산회사, 종교단체,협동조합 등 다양한다. 민간임대사업자는 10년이상 보유시 양도세 감면 혜택을 받는다. 보유시에도 세금혜택을 받는다.

둘째, 미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주택담보 대출제도가 발달하지 않아 젊은층은 집을 사기가 쉽지 않았다. LTV(주택담보대출비율)가 집값의 60%로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 미국 등 다른 나라는 자가보유 촉진책에 따라 첫 내 집 마련에 대해서 LTV가 90% 이상 적용되고 세제 혜택을 받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셋째, 거래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든다. 부동산 매매 시 거래비용이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0%가 넘고 최대 15%나 된다. 2006년 부동산취득세율 결정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가 세율을 3.5%에서 최대 6.5%로 올렸기 때문이다. 독일은 취득관련 세금은 높지만 보유세는 취득가액의 0.2%로 비교적 낮다.

넷째, 독일 국민들은 과거 초인플레이션를 경험, 은행 빚을 내는 것을 꺼린다. 일정 정도 자금을 모아야 집을 사기 때문에 젊은 층의 집사는 비율이 낮았다.

다섯째, 지역균형발전 덕분에 2000년대까지 특정지역의 집값이 급등하지 않았다. 영국의 런던, 미국의 뉴욕처럼 대도시 한두곳에 인구가 집중적으로 몰리면 집값이 폭등하지만, 독일은 7개 대도시가 전국에 걸쳐 분산돼 있다. 많은 세금을 부담하면서까지 집을 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경기침체로 주택가격 장기침체를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착각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독일도 인구가 감소했지만, 이민과 난민유입으로 2010년대 인구가 급증하고 경제호황으로 집값이 급등했다.

1980년대만 해도 서독은 고령화로 인구가 감소 추세였고 주택가격도 안정돼 있었다. 1990년대 초반 독일 통일 이후 약 5년간 독일계 이민 및 동독에서의 이주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집값이 급등했다. 1990~1994년 중 주택가격이 23.5% 상승했고 주택건설 붐이 불었다. 연간 주택공급량이 통일 이전 서독과 동독을 합쳐 40만 가구 수준이었지만, 건설붐이 불면서 60만 가구로 급증했다. 실업자가 넘쳐나는데다 공급까지 늘면서 집값이 하락했고 2000년대 중반까지 집값은 안정세를 보였다. 1995∼2002년 저금리와 소득증가를 바탕으로 영국의 주택가격이 125%나 급등하는 등 대부분의 국가의 주택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동안에도 독일(-5%)은 일본과 함께 하락했다. 일본은 주택가격 거품 붕괴 탓이지만 독일은 경기 침체가 큰 원인이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독일은 ‘고실업-저성장-저고용’의 악순환에 빠져 유럽의 병자'로 조롱받았다.

◇집값 급등의 방아쇠는 경기 회복, 실업률 저하, 인구증가, 저금리

한때 유럽의 환자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경제가 좋지 않았던 독일은 2010년이후 실업률이 급속도로 낮아지는 등 경제가 호황국면에 진입했다. 호황기로 접어들면서 집값도 꾸준하게 오르고 있다.

독일의 인구는 지난 2002년 8250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았었다. 저출산·고령화 탓이다. 독일 정부는 난민수요와 이민확대정책으로 전환하면서 2010년부터 10년간 600만명의 인구가 늘어났다. 메르켈 총리가 주도하는 독일 대연정은 지난 2015년 여름 이른바 ‘발칸 루트’로 이동하는 난민들을 무조건 받아들이겠다는 난민정책을 발표했다. 이민자와 난민 유입에 따른 인구 증가로 경제활동인구를 늘려 경제성장을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작용했다.

자국인 실업률 증가, 난민들의 범죄 발생 등 사회통합을 저해할 것이라는 반대를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호황이었다. 2000년대 중반 12%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이 2012년 5%대로 낮아질 정도로 경기가 회복됐다. 경기 회복은 유럽통합과 ‘하르츠개혁’을 통한 노동개혁 정책이 성공한 것도 원인이다. 결과적으로 이민확대 정책은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면서 경제적 파이를 키웠다. 인구감소를 방치한 일본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 것이다.

독일은 부동산 시장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외국 자본들의 투자 대상이 됐다. 외국인들의 주택시장 투자가 2013~2017년에 평균 20%에서 2018년 이후 약 27%로 증가했다. ‘브렉시트 효과’로 금융권이 영국 런던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하고 있다. 도이치뱅크는 브렉시트가 약 5000가구의 추가 주택 수요를 창출해 프랑크푸르트의 집값을 끌어 올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

사회주택이 줄어든 것도 한 몫 했다. 사회주택은 2006년에 209만4200채에 이르던 사회주택이 2018년에는 117만6500채로 줄어든 것이다. 사회주택은 일반 건축 업자도 국가의 재정 지원으로 지을 수 있는 대신 의무적으로 30년 동안 저렴한 월세로 임대해야 한다. 그러나 30년의 기한을 채운 사업자들이 이를 시장에서 거래하면서 그 숫자가 줄기 시작했다.

◇독일 정부, 주택공급 확대하지만, 탈원전도 걸림돌

독일정부는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2018년에 2021년까지 150만 채의 주택 건설을 약속했다. 연간 약 37만5000채의 주택건설 목표는 달성이 쉽지 않다. 2019년에는 29만3000가구에 그쳐 전년도의 28만3000가구보다 조금 늘었을 뿐이다.

주택공급을 제한하는 제도가 너무 많아 공급이 늘지 않았다. 독일 연방정부는 탈 원전 선언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설비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개발업자들은 설비 비용부담을 꺼려 저가 소형주택보다는 고가 대형주택에 집중했다.

독일은 각주마다 건축법이 달라, 업체들이 인허가를 받는데 애를 먹고 있다. 녹색당 등 환경운동이 가장 활발한 나라이다 보니 토지개발에 대한 규제도 강력하다. 슈피겔은 “건설 부문을 독자적으로 담당하는 정부 부처가 1990년대 말에 아예 없어졌으며 지자체들이 건축 담당 공무원도 감원, 건축허가를 받는 데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