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와 행정안전부가 지난 3일 '재산세 부담 완화방안'을 발표한 가운데 공시가격 인상으로 인한 서민층의 조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1세대 1주택자가 보유한 공시가격 6억원 이하 주택의 재산세율을 내년부터 3년간 0.05%포인트씩 인하한다. 사진은 4일 오후 송파구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강남구 일대 아파트 모습./연합뉴스

국세청이 다음 주 초 올해 종합부동산세 납세 의무자에게 고지서와 안내문을 발송한다. 서울과 수도권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작년보다 세 부담이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강남권 일부 지역에서는 국민주택 기준 크기인 전용면적 84㎡(공급면적 34평) 1주택 보유자도 이미 납부한 재산세와 12월 납부할 종부세를 합쳐 1000만원이 넘는 보유세를 내게 된다. “집 한 채 가진 죄로 매달 100만원 가까운 월세를 나라에 갖다 바치는 꼴”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17일 본지가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과 모의 계산을 한 결과,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전용 84㎡를 보유한 1주택자는 올해 보유세(재산세+종부세)로 1082만원을 낼 전망이다. 지난해 납부한 세금(740만원)보다 46%(342만원) 증가한 액수다. 보유세 중 종부세(농어촌특별세 포함)만 따지면 1년 사이 229만원에서 419만원으로 82% 급증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번 정부 들어 집값이 많이 올랐고, 정부가 최근 2년 동안 보유세 과세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을 고가 주택 위주로 대폭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종부세 납세자에게 올해의 세 부담 증가는 ‘예고편’이고, 내년부터 진짜 ‘세금 폭탄’이 떨어질 전망이다. 정부와 여당의 합작으로 지난 8월 종부세법이 개정되면서 내년부터 1주택자도 종부세율이 최고 0.3%포인트 오르고, 다(多)주택자는 적용 세율이 거의 두 배 수준으로 뛴다. 7년 전 서울 송파구에 전용면적 84㎡ 아파트를 장만해 올해 처음 종부세 납부 대상이 된 김모(49)씨는 “정부가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집값을 올려놓고, 아무 시세 차익도 얻지 못한 1주택자에게까지 막대한 세금을 걷고 있다”고 말했다.

마포도 용산도… 文정부서 보유세 2배로 뛰어

서울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면적 84㎡ 보유 1주택자는 다음 주 국세청으로부터 약 300만원에 달하는 종합부동산세 고지서를 받을 전망이다. 지난 7월과 9월 2차례에 걸쳐 낸 재산세를 더하면 올해 내는 보유세가 907만원에 이른다. 작년 보유세 납부액(621만원)보다 46% 증가했다. 그러나 이 1주택자는 내년이면 내야 할 보유세가 1328만원으로 뛴다. 정부가 공시가격을 시세의 90%까지 올린다고 공언한 2025년엔 4754만원을 세금으로 물게 될 판이다. 국민주택 기준인 중소형 아파트 1채를 가졌을 뿐인데, 일반적인 월급쟁이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세금 폭탄’을 떠안는 것이다.

/자료=우병탁 신한은행 세무사

흔히 30평대 아파트라고 부르는 전용 85㎡ 이하 1주택자도 ‘보유세 1000만원 시대’가 열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해마다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했고, 과세의 기준인 공시가격은 고가 주택일수록 많이 올랐다. 종부세율이 오르는 내년부터 세 부담은 더 심해진다. 정부는 “집값이 오른 만큼 세금도 오르는 게 당연하고, 세금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납세자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정책 실패로 집값을 올려놓고, 그 부담을 일부 국민에게 떠안긴다”는 반발이 나온다.

◇"어렵게 집 샀더니, 나라가 벌금 물리는 느낌"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이 17일 모의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 강북에서도 인기 지역의 신축 아파트 보유세는 월급쟁이에게 부담스러운 수준까지 올랐다.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 84㎡는 올해 처음 종부세가 부과돼 총 보유세가 325만원으로 작년(227만원)보다 43% 늘었고, 내년엔 454만원으로 증가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보유세는 153만원이었는데 3년 만에 2배로 뛰었고, 내년엔 3배가 되는 셈이다. 이 아파트에 사는 외벌이 직장인 김모(39)씨는 “10년간 악착같이 모은 돈에 대출까지 더해서 어렵게 집을 샀는데, 한 달치 월급을 세금으로 가져가는 건 가혹하다”며 “국민으로서 당연히 낼 세금이라는 생각보다 나라가 벌금을 부과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용산구 이촌동 건영한가람 아파트 전용 84㎡도 2017년 176만원이던 보유세가 올해 406만원으로 뛰었고, 5년 뒤엔 1080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강남에서는 도곡동 도곡렉슬(918만원),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837만원) 30평형대 1주택자가 당장 내년부터 1000만원대 보유세를 낼 것으로 보인다.

내년부터 1주택자도 종부세율이 오르면서 보유세 인상 폭은 더욱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통해 현재 70% 수준인 시세 대비 공시가격의 비율(현실화율)을 9억원 이상 주택은 2025년까지 90%로 높이기로 했다. 반포동 반포자이 전용 84㎡ 보유세는 내년 1538만원, 2025년엔 3219만원까지 늘어난다.

◇집값 싼 2주택자, 강남 1주택자보다 세금 많아

다(多)주택자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종부세 중(重)과세가 시작되는 내년엔 서울과 지방에 중저가 주택 한 채씩 가진 사람이 서울의 ‘똘똘한 한 채’ 보유자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서울 마포래미안푸르지오와 대전 유성구 죽동 푸르지오 전용 84㎡를 한 채씩 보유한 사람의 보유세는 올해 969만원에서 내년엔 2530만원으로 급증한다. 정부가 7·10 대책을 통해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와 3주택 이상 다주택자에 대해 0.6~3.2%인 종부세율을 1.2~6%로 높였기 때문이다. 두 아파트의 공시가격을 더하면 14억3000만원이다. 그런데 공시가격 20억3700만원짜리 반포자이 1주택자보다 보유세를 1000만원가량 더 내야 한다. 다주택자를 겨냥한 일방적 규제 때문에 선의의 피해를 보는 사례가 속출할 전망이지만, 정부는 “다주택자 중과세 해당자는 전 국민의 0.4%에 불과하다”는 말만 하고 있다. 부동산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23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고도 집값을 못 잡은 게 아니라 처음부터 세금을 더 걷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집값을 띄우는 것”이란 비아냥이 나온다.

◇'공평과세' 집착에 무너진 조세 안정성

정부는 “시세보다 공시가격이 턱없이 낮아 투기를 부추기고, 무주택자의 상대적 박탈감을 키운다”는 이유로 최근 3년간 매년 서울 아파트 공시가격을 10% 넘게 올렸다. 종부세를 급격히 올리는 것도 비슷한 명분이다.

하지만 공평과세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조세 안정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세금이 늘어나더라도 납세자가 부담 가능한 수준에서 관리돼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다주택자에게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세금을 강요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조세 저항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보유세는 높이더라도 선진국처럼 실거주자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장치를 도입하고, 거래세는 낮추는 유연한 정책을 펼쳐야 시장 안정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