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변신 중인 브랜드 아파트가 주택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내에서 ‘브랜드 아파트’ 시대가 열린 지 20년이 지나면서 이전과 차별되는 상품성을 강화한 혁신적인 주거 상품이 계속 나오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은 잇따라 브랜드 리뉴얼(renewal)을 단행하면서 고품격 아파트 경쟁에 불을 붙였다.

게티이미지뱅크

대림산업은 올해 ‘e편한세상’ 출범 2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브랜드 혁신을 진행했다. 새로운 슬로건 ‘엑설런트 라이프(For Excellent Life)’를 기반으로 대한민국 최고 아파트로 자리매김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건설은 11년 만에 다시 ‘더샵’ 브랜드를 새롭게 단장하면서 ‘주거의 본(本)이 되다’를 목표로 강조했다. 롯데캐슬은 지난해 새 디자인의 ‘롯데캐슬 3.0’을 선보이며 기존의 고급스럽고 클래식한 이미지에 젊고 세련된 느낌을 더했다. 대우건설도 ‘푸르지오’에 대대적인 변화를 꾀하면서 ‘본연이 지니는 고귀함’을 새로운 브랜드 철학으로 내세웠다. 한화건설이 새 아파트 브랜드로 출시한 ‘포레나’는 1년여 만에 프리미엄 주거 상품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GS건설은 ‘자이’의 확고한 브랜드 이미지를 내세워 프리미엄 주거 상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부영 ‘사랑으로’, 우미건설 ‘우미린’도 다양한 지역에서 우수한 아파트 공급으로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며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세대 불문 “아파트 브랜드 이미지 따진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이 지난 5월 전국 716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세대에 상관없이 ‘브랜드 이미지’가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 국민의 의식주(衣食住)에서 아파트는 주거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지난 8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에서 일반가구 2034만 가구 중 아파트 거주가 1041만 가구로 전체의 51.1%를 차지했다. 전년보다 39만 가구 늘어난 수치이다.

‘어떤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가 사회·경제적 지위를 평가하는 잣대 중 하나가 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주택시장 소비자들은 아파트를 선택할 때 어떤 기준을 중요시할까.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이 지난 5월 전국 716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세대에 상관없이 ‘브랜드 이미지’가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나타났다. 20~30대 중 39.8%가 아파트를 고를 때 브랜드 이미지가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디자인이나 인테리어(11.9%), 자재·품질(10.8%)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였다. 40~50대 사이에서도 아파트 선택의 기준으로 브랜드 이미지(36.3%)를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 이어 가격상승 기대(14%), 자재·품질(12.1%) 순이었다.

브랜드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일부 건설사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별도 운영하기도 한다. 차별화한 설계와 고급 이미지를 원하는 소비자의 수요를 겨냥한 것이다. 특히 서울 핵심 지역의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 수주전에서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대림산업의 고급 주거 브랜드 ‘아크로(ACRO)’는 ‘가장 높은, 넓은’이라는 의미로 2013년 서울 강남구 도곡동 ‘대림아크로빌’에 처음 적용됐다.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 리버파크’는 국내에서 3.3㎡당 가격이 가장 비싼 단지로 꼽힌다. 대우건설은 일부 단지에 기존 ‘푸르지오’ 브랜드에 정상, 꼭대기란 뜻의 ‘써밋(summit)’을 붙인 ‘푸르지오 써밋’을 적용한다. 서울 서초구 ‘서초삼호1차’를 재건축한 ‘서초 푸르지오 써밋’에 처음 도입했다. 롯데건설도 롯데캐슬과 별도로 프리미엄 브랜드 ‘르엘(LE-El)’을 출시해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에 적용했다. 르엘은 한정판을 의미하는 ‘Limited Edition’의 약자인 ‘LE’와 시그니엘, 애비뉴엘 등 롯데의 상징으로 쓰이는 접미사 ‘EL’을 결합한 단어다. 현대건설도 ‘힐스테이트’와 별도로 ‘디에이치(THE H)’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갖고 있다.

◇'브랜드 아파트' 등장 20년 혁신이 관건

국내 최초의 대규모 단지형 아파트는 1962년 입주한 서울 마포구 도화동 마포아파트다. 한국주택공사(주공)가 지은 이 아파트는 6층 높이에 연탄보일러와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1970년대 지은 아파트 이름은 보통 ‘지역’을 드러내거나, 동네 이름과 ‘건설사명’을 조합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서울아파트’(반포주공), ‘한강맨션아파트’ ‘압구정 현대아파트’, ‘잠실 주공아파트’ 등이다.

건설사명을 드러내지 않고 별도의 이름을 붙인 아파트도 속속 등장했다. 라이프주택개발의 ‘장미’ ‘진주’, 한보건설 ‘은마’ ‘미도’, 삼호주택 ‘개나리’ ‘진달래’, 청화기업의 ‘청실’ ‘홍실’ 등이 등장했다. 이런 아파트는 건설사들이 따로 작명을 했지만, 2000년대 이후 쏟아진 브랜드 아파트처럼 마케팅 전략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는 평가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국내 주거 시장엔 브랜드 아파트 전성시대가 열렸다. 1999년 롯데건설이 서울 서초동에 ‘롯데캐슬’ 브랜드를 단 아파트를 공급한다고 밝혔고, 이듬해 삼성물산이 아파트 BI(브랜드 아이덴티티) 선포식을 갖고 ‘래미안’을 발표했다. 대림산업도 2000년 ‘e-편한세상’을 출시하며 “자연 친화적 단지에서 편한 세상을 경험(experience)한다”고 강조했다. GS건설은 2002년 ‘고급 주거 문화를 이끄는 고품격 아파트’라의 의미로 ‘자이’를 출범했고, 대우건설은 2003년 자연과 함께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을 담아 ‘푸르지오’를 발표했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는 “주택시장에서 수요자의 눈높이는 계속 높아지고, 트렌드 변화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빠르다”며 “차별화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해 소비자에게 호감을 사려는 건설사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