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래미안아이파크’ 전용 84.9㎡(34평형) 24층 매물이 이달 8일 10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됐다. 일주일 뒤인 10월 15일 같은 면적 20층 전세 물건은 15억5000만원에 계약을 맺었다. 일주일 사이에 같은 단지, 같은 평형 전셋값이 5억원이나 오른 것이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현재 34평 전세 시세는 16억원 정도이다. 10억5000만원은 기존 세입자가 재계약한 물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 사이 4~5억원 널뛰는 전셋값

지난 7월 말 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가 도입된 주택임대차법 개정 후 서울 전세 시장에서 ‘이중 가격’ 현상이 극심해지고 있다. 기존 세입자의 재계약 전셋집은 ‘최대 5% 인상’에 걸려 실거래 가격이 시장의 시세를 반영하지 못하고, 새로 세입자를 들이는 전셋집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실수요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전용 84㎡ 아파트 전셋값이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4~5억원씩 차이가 나는 일이 흔해졌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세 이중 가격 심화는 결국 2년 뒤 더 어려운 전세난을 불러올 수 있고, 결국 피해는 세입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 84.8㎡ 전세가 이달 14일 신고가인 12억3000만원(5층)에 계약됐다. 6일 뒤엔 8층 전세 물건은 4억4000여만원 내린 7억8750만원에 계약서를 썼다.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전용 84.9㎡는 지난달 28일 15억5000만원(5층)에 세입자를 맞이했는데, 다음 날인 29일엔 4억8000만원 내린 10억7000만원(14층)에 계약됐다.

비강남 지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쏟아지고 있다. 양천구 목동 ‘목동신시가지 5단지’ 전용 65㎡는 지난달 22일 4억3000만원(5층)에, 이달 15일엔 7억5000만원(12층)에 실거래 신고를 마쳤다. 은평구 녹번동 ‘래미안베라힐즈’ 전용 84.95㎡는 이달 7일엔 16층 전세가 6억에 거래됐지만, 12일엔 6층 전세 매물이 7억5000만원에 계약됐다.

◇"2년 뒤, ‘전세 난민’ 쏟아질 수도"

전문가들은 “정부·여당이 강행한 주택임대차법 개정이 부동산 시장을 왜곡한 것이고, ‘이중 가격’의 피해는 결국 세입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기존 세입자는 당장은 보증금 5% 인상에 그쳐도, 재계약 기간이 끝나는 시점엔 실제 시세와의 차이가 감당할 수 없이 커져 ‘전세 난민’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시중 은행 부동산 담당자는 “최근 전세 계약 10건 중 신규 계약은 2~3건 정도인데, 2년 후엔 대다수 세입자가 급등한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자기가 살던 지역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소장은 “지금 전세난은 수요 공급 불일치 때문인데 정부가 가격 억제책을 써서는 못 잡는다”며 “대출을 더 해주든지, 서울 재건축 등 정비 사업 규제 완화로 공급을 빨리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