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차 직장인 정모(41)씨는 목돈으로 예금에 가입하기 위해 저축은행 상품들을 알아보다가 당황했다. 최근 “시중은행이 연 4%대의 금리를 준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저축은행 12개월 만기 상품의 금리도 연 4~5%대에 그쳤기 때문이다. 보통 저축은행의 예금 금리가 시중은행보다 훨씬 높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정씨는 지난 30일 우리은행 지점을 방문했는데, 창구에서 ‘연 0.2%포인트 금리 우대 쿠폰’을 주며 예금 상품 가입을 권유했다. 우리은행 ‘WON플러스예금’은 4.05%의 기본금리를 주는데, 우대 쿠폰까지 쓴다면 연 4.25%의 금리를 받을 수 있었다. 정씨는 “저축은행과 시중은행의 금리가 너무 붙어서 저축은행에서 가입할 만한 상품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픽=이지원

최근 저축은행과 시중은행의 예금 금리 차이가 1% 포인트도 나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통상 2금융권인 저축은행은 시중은행보다 0.5~1%포인트는 높은 금리를 주며 고객을 유치해왔다. 특히, 작년 말에는 레고랜드 사태로 시중 유동성(자금 흐름)이 줄어들자 저축은행에서는 연 6.5%의 정기예금 특판을 잇따라 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저축은행 업계는 9년 만에 적자로 전환하는 등 수익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1년 전 무리한 수신 금리 인상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는 분석도 많다. 이에 저축은행들은 올해 무리하게 수신 금리 올리기를 포기하는 모양새다.

그래픽=이지원

◇시중은행-저축은행 0.08%포인트 차이

31일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저축은행 1년 만기 정기예금 79개의 평균 금리는 연 4.13%다. 최고 금리는 연 4.5%로 대백, 드림, 스타, 애큐온, 엠에스, 유니온 참저축은행 등이 판매하고 있다.

한편,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연 4%대로 올라서고 있다. 31일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37개 상품 중 최고금리가 연 4%가 넘는 상품은 총 20개였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정기예금 금리 역시 모두 연 4%를 돌파했다. 가장 높은 금리를 주는 상품은 SC제일은행의 ‘e-그린세이브예금’으로 최고 연 4.35%의 금리를 준다.

이렇게 되면 저축은행의 평균금리(4.13%)와 5대 은행 예금 최고금리(4.05%)의 차이는 불과 0.08%포인트밖에 되지 않는다. 가장 높은 금리를 주는 저축은행과 시중은행의 상품을 비교해봐도 0.15%포인트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수익성 빨간불 들어온 저축은행

이렇게 시중은행 금리와 저축은행 금리가 붙어버린 것은 저축은행이 수신 금리를 더 올리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작년 ‘고금리 특판 경쟁’의 여파로 저축은행은 올해 적자에 시달리게 됐다. 작년 말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이 벌인 고금리 수신 경쟁이 결국 저축은행 업계에 ‘독’이 됐다는 것이다.

저축은행은 올해 9년 만에 적자로 전환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저축은행 업계의 당기순이익은 962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자 이익이 줄고 대손 비용(못 받은 돈을 손실 처리하는 비용)이 늘어난 영향이다. 작년 같은 기간 8956억원의 흑자를 냈던 것과 비교하면 9918억원 줄었다. 저축은행은 지난 1분기 9년 만에 첫 적자(-528억원)를 낸 데 이어 2분기에도 434억원 손실을 보였다. 일부 저축은행은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도 나오고 있다.

한편, 저축은행중앙회는 고금리 예·적금 상품의 만기에 대비해 10조원의 예탁금을 준비했다. 예탁금은 중앙회가 개별 저축은행으로부터 넘겨받아 운용하는 자금이다. 저축은행은 중앙회에 예탁한 금액을 필요할 때 자유롭게 인출해 사용할 수 있다. 저축은행들은 예금 금리 인상에는 신중하되, 자체 보유금을 활용해 유동성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도 저축은행 업계의 부진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2024년 금융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내년 저축은행업은 은행과의 예금 금리 경쟁과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 가능성 등으로 적자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