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 뉴욕 증시에 상장된 일본 ADR(주식예탁증서)을 체크한다, 증권방송을 하루 종일 틀어놓고, 초 단위로 번쩍이는 주식 모니터 3대에서 사냥감을 찾는다, 관심종목 100여개를 지켜보며 당일 사고 판다, 경제신문을 꼼꼼히 읽으며 기업 실적을 챙겨본다, 중요한 매매 기록은 전부 노트에 적고 복기한다...

87세 베테랑 데이트레이더(단기 투자자)인 후지모토시게루(藤本茂)씨의 일상이다. 30~40대 전업투자자보다도 더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낸다. 지난 1954년 18세의 나이로 투자에 입문한 후지모토씨는 69년 동안 수많은 폭등장과 폭락장을 겪으며 살아남은 백전노장이다.

일본의 87세 데이트레이더인 후지모토씨. 운용 자산은 16억엔, 투자 경력은 69년이다./도쿄TV

1️⃣일본 도쿄TV가 소개한 87세 데이트레이더

지난 22일 일본 도쿄TV는 현금 16억엔(약 154억원)을 주식시장에서 굴리는 후지모토씨의 투자 전략을 소개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지만, 기업가치와 적정주가를 얘기할 때는 여느 젊은이 못잖게 눈빛이 반짝였다.

일반적으로 데이트레이더의 투자 전략은 간단하다. 주가가 오르면 팔고, 내리면 사는 것이다. 후지모토씨는 특히 바닥주(株) 줍기 전략을 즐긴다. 그는 “루머만 듣고 달리는 말엔 절대로 올라타지 않으며, 이제 더 이상 떨어지긴 힘든 바닥주만 줍는다”면서 “나이 들면 누구나 그런 주식 매매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매매할 땐 다양한 데이터와 보조 지표를 활용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지난 14일 후지모토씨가 보유하고 있던 기업(디지털마케팅회사 CS-C)이 분기 실적발표를 했다. 그런데 영업이익이 20% 증가했다는 깜짝 발표를 했고, 다음날 해당 기업 주가는 상한가로 치솟았다.

후지모토씨는 “주식은 결국 심리인데, 좋은 실적이 발표되니 ‘사자’가 몰려 주가가 급등했다”면서 “하지만 각종 지표(PER 37배, PBR 1.7배, 높을수록 고평가)로 보면 현재 주가는 비싸다고 판단했기에 매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후지모토씨는 마치 제도권 펀드매니저처럼 경제신문에서 기업별 실적을 꼼꼼하게 살피면서 거래한다./도쿄TV

그는 MACD(이동평균 수렴확산지수)와 RSI(상대강도지수) 같은 것도 참고해 거래한다. 후지모토씨는 “RSI를 보면 주가가 현재 강세인지 약세인지 알 수 있는데, 숫자가 70을 넘으면 과열이라고 생각해 매도하고, 30 미만이면 과매도라 보고 매수한다”고 말했다.

“머니게임에서 개인 투자자가 믿을 언덕은 오로지 실적뿐입니다. 매출·이익·배당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주주환원에도 열심인 기업의 주가가 떨어질 때(자주 발생하진 않지만)를 기다렸다가 낚아채는 것이 성공 비결입니다.”

운용자산이 이미 16억엔이 넘고 주식 배당 수입도 엄청나지만, 그는 은퇴하지 않고 평생 현역 데이트레이더로 살겠다고 했다. 후지모토씨는 방송에서 “죽을 때까지 은퇴는 없다, 나는 데이트레이딩을 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하루 거래 내역을 자세히 기록하면 데이트레이딩 실력을 늘리는 데에 도움이 된다. 후지모토씨는 장이 끝나면 그날의 거래 내역을 글로 쓰면서 복기한다./도쿄TV

2️⃣한국에서도 성공한 백발 데이트레이더 나올까?

노익장을 자랑하는 87세 데이트레이더에 대해, 한국 투자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대형 증권사에서 일했던 50대 남성 A씨는 “일본은 선진국 증시이기 때문에 기술적 분석이나 투자 경험 등이 굉장히 유용하고 쓸모가 있다”면서 “하지만 한국 증시에서 노인이 그렇게 거래했다간 심장마비 온다”고 말했다. 한국 증시는 투자자 뒤통수를 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실적이나 차트만 보면서 투자하면 혈압만 오르기 쉽다는 것이다.

A씨는 “한국 증시는 변동성이 너무 높고 작전이 판치기 때문에 일반적인 개인 투자자가 잘못 덤비면 당하기 쉽다”면서 “반면 일본은 주가가 요동치지 않고 기업 실적도 주가에 충실히 반영되기 때문에 80대 데이트레이더가 수익을 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A씨의 말은 실제 숫자로도 증명된다. 24일 JP모건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의 한국 증시 변동성은 21.3%(높을수록 심한 변동성)로, 중국에 이어 전세계 2위였다. 반면 일본은 14%로, 증시 급등락이 미국(14.7%)보다도 심하지 않은 안정적인 곳이었다.

재야의 고수로 알려져 있는 일산 왕개미 B씨 역시 “데이트레이딩을 하려면 순간적인 판단과 결단이 중요한데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반응이 느려져서 힘들다”면서 “더구나 데이트레이딩은 차트를 통한 매수·매도가 기본인데, 한국 증시는 굉장히 변화무쌍하고 빨라서 그런 식의 매매가 안 통한다”고 말했다. B씨는 “그나마 한국 증시에선 PER 등 기업 가치를 이용한 매매를 해야 생존 확률이 높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데이트레이딩은 돈을 벌기 위해서 하면 안됩니다. 백전백패하기 쉬워요. 가급적 하지 않는 게 좋지만, 꼭 하고 싶다면 젊은 시절부터 철저하게 깨지면서 자기만의 확실한 감을 익힌 다음에 참전해야 합니다. 물론 적은 돈을 갖고 하는 것은 추천합니다. 고스톱보다 더 재밌는 것이 주식이기 때문이죠. 경제에 관심도 생기고 세상일도 재밌어지고 치매 예방도 되니까 은퇴자들도 하면 좋아요. 단 돈 버는 것과 재미는 확실히 구분해야 합니다.”

미국에는 고령의 투자 고수들이 적지 않다. 워런 버핏의 스승이라는 찰리 멍거는 주식으로 부를 일군 억만장자다. 올해 99세로 고령이지만 주주 총회에도 직접 참석하는 등 아직도 활발히 활약하고 있다./조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