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폭격으로 불타는 오데사 항구 - 지난 20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오데사 항구에서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불타고 있는 한 건물에 소방대원이 화재 진압을 위해 출동한 모습. 오데사 항구는 우크라이나 남부의 최대 수출 항구로, 이곳이 공격당하면 곡물 수출을 할 다른 대체 항구를 찾기 어렵다. /AFP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처음으로 지난 24일(현지 시각) 다뉴브강 항구도시를 공격하면서 전 세계 식량 위기가 빠르게 고조되고 있다. 국제 정세가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치달으면서 글로벌 곡물 가격도 금세 솟구치기 시작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5일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파기로 전 세계 곡물 가격이 최고 15%가량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극단적 폭염·폭우가 이어지는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까지 맞물리면서 전 세계 식량난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세계식량계획(WFP),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등이 지금 같은 안보 위기와 이상 기후 현상이 지속하면 지구 식량이 인류를 먹여 살릴 양(量)에 미치지 못하는 ‘한계(限界) 식량’ 시대가 올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식량 위기가 변수(變數)가 아닌 ‘상수(常數)의 시대’가 닥쳐왔다는 것이다.

◇전쟁에 기후플레이션까지… ‘한계 식량’ 시대 오나

러시아가 24일 다뉴브강 항구도시 레니에 공습을 퍼붓자, 세계 곡물 시장은 요동쳤다.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선물 시장에서 밀 가격은 전날보다 10% 넘게 급등해 부셸(약 27.2㎏)당 7.7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5개월 만의 최고치다. 지난 19일 러시아가 오데사 항구를 공격할 때 하루 만에 11%가 올라 7.43달러가 됐다가 이후 다소 안정세를 보이더니 또다시 뛰어오른 것이다. 옥수수 선물 가격도 하루에 5.7% 넘게 올라 부셀당 5.71달러가 됐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이 러시아의 이번 공격을 전 세계의 먹거리 공급망을 틀어쥐는 ‘식량 테러’라고 규정하고 전 세계에 공동 대응을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픽=백형선

올해는 특히 심각한 엘니뇨발(發) 가뭄과 폭우 같은 이상 기후까지 겹쳐, 식량 위기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최근 가격이 폭등한 대표 품목 중 하나가 올리브유다. 스페인 남부의 가뭄과 폭염으로 올리브 생산이 크게 줄면서, 올해 가격은 kg당 7유로(약 1만원)를 넘어섰다. 작년 9월 사상 처음으로 kg당 4유로(약 5700원)를 넘긴 뒤로도 계속 가격이 치솟고 있다. 설탕과 카카오, 쌀도 인도 산지가 더위로 달아오르면서 작황이 나빠지자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인도는 작년부터 45도가 넘는 살인적 폭염에 자국 곡물 수급을 위해 밀 수출을 금지했고, 지난 21일엔 바스마티(길쭉하게 생긴 쌀) 품종을 제외한 모든 품종의 쌀 수출도 금지했다.

◇저소득 국가, 저소득층이 더 타격

식량 위기가 심화하면 저소득 국가와 저소득층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 가령 이번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파기로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지역도 소말리아, 예멘,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다. 유엔 세계식량농업기구가 분쟁을 겪는 아프리카 지역 국가로 보낼 곡물을 우크라이나에서 구매해왔기 때문이다. WFP가 전 세계 난민 1억2500만명을 지원하기 위해 구입하는 곡물의 절반가량도 우크라이나산이다. 흑해곡물협정이 발효된 이후 우크라이나는 밀, 옥수수 등 3280만t의 식량을 아프리카·중동 지역에 수출해왔다. 흑해곡물협정 덕에 전쟁 중에서도 이런 지역은 어느 정도 식량난을 피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 상황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엘니뇨에 따른 인도의 쌀 수출 중단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곳도 마찬가지다. 인도 상무부 자료에 따르면, 2022~2023년 인도산 쌀의 주요 수입국은 베냉(880만t), 중국(850만t), 세네갈(750만t), 코트디부아르(680만t), 토고(530만t) 등이다. 인도 쌀수출협회의 크리시나 라오 회장은 “인도가 전 세계 쌀 시장에 끼칠 충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밀 시장에 악영향을 준 것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