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영국 런던 내추럴 와인 바 '헥터스'에서 열린 ‘안주와 반주(Anju&Banju)’ 팝업. 매실즙 소스를 뿌린 생선회, 들기름 샐러드, 불고기 같은 음식을 우리나라 한식을 내추럴 와인 안주로 즐길 수 있는 행사였다. /포엣츠 앤 펑크스
작년 말 영국 런던 내추럴 와인 바 '헥터스'에서 열린 ‘안주와 반주(Anju&Banju)’ 팝업. 매실즙 소스를 뿌린 생선회, 들기름 샐러드, 불고기 같은 음식을 우리나라 한식을 내추럴 와인 안주로 즐길 수 있는 행사였다. /포엣츠 앤 펑크스

영국 런던의 한 내추럴 와인 바 ‘헥터스(Hector’s). 이스트 런던의 멋쟁이들이 찾는다고 알려진 곳이다. 작년 말 이곳에선 이색 팝업 행사(임시 판매 행사)가 열렸다. 서울식 요리책 ‘안주와 반주(Anju&Banju)’를 만든 런던의 출판사 포엣츠 앤 펑크스가 우리나라 음식을 내추럴 와인과 내놓은 것이다. 런던의 젊은 손님들은 이날 매실즙 소스를 뿌린 생선회, 들기름 샐러드, 불고기를 내추럴 와인에 곁들여 먹었다. 포엣츠 앤 펑크스 오선희 대표는 “저녁 8시 전에 음식이 모두 품절됐다”면서 “정부 차원의 딱딱한 한식 세계화 대신, 세련된 글로벌 도시 구석에서 진짜 한식 인기가 꿈틀대기 시작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길거리 음식을 재해석해 판매하는 런던 온 더 밥 매장에 현지인 고객이 가득 찼다(위 사진). 런던 출판사 포엣츠 앤 펑크스가 출간한 한식 요리책 ‘안주와 반주’를 판매하는 영국 런던 서점의 모습(아래 사진). /온더밥, 포엣츠앤펑크스

영어로 출간된 ‘안주와 반주’는 영국 V&A 뮤지엄·테이트 모던 뮤지엄 서점에서 판매된다. 일본·미국에서도 팔린다. 최근 파리 주요 일간지 ‘르몽드’에도 서평이 실렸다. 오 대표는 “구절판이나 신선로 같은 한식이 아닌, 장조림에 버터를 비벼주던 우리 시대 서울 엄마의 한식을 소개하고 싶었는데, 그게 요즘 젊은 외국 친구들에게도 통하더라”고도 했다.

우리나라 우정욱 셰프의 40가지 조리법을 영어로 소개한 책 '안주와 반주'. 최근 파리 주요 일간지 ‘르몽드’에도 서평이 실렸다. /포엣츠앤펑크스

◇유럽 식문화 유행 주도하는 ‘젊은 한식’

양념치킨과 떡볶이, 김치찌개, 군만두 같은 음식을 파는 ‘온 더 밥’은 영국 런던 쇼디치와 생폴,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한식당이다. 손님은 대부분이 20~30대 현지인. 떡볶이는 ‘토포끼(Toppoki)’, 군만두는 ‘쿤만두(Kunmandu)’, 김말이도 ‘김마리(Gimmari)’라고 우리식 그대로 읽으며 주문한다. 영국에서 BBQ 한식당 ‘코바’와 ‘온 더 밥’을 운영하는 린다 리 대표는 “우리나라 길거리 음식을 세련되게 재해석한 것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면서 “올해 파리에 지점을 더욱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온 더 밥 파리'. 이곳에선 젊은 현지 손님들이 떡볶이, 군만두를 우리식 그대로 읽으며 주문한다. /'onthebabparis' 인스타그램
영국 런던 ‘더 아이비 아시아’ 레스토랑에서 한국식 만두를 즐기는 손님들. 본래 일식 위주 음식을 팔던 이곳은 작년 말부터 한국식 ‘만두’ 메뉴를 내놓고 있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로 만든 메뉴다. /런던=이미지기자

식문화(食文化)의 선진국으로 불리는 유럽 구석구석에 새로운 한식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한때 한식은 유럽의 일부 소비자들이 ‘별미’로 즐기는 음식이었지만, 최근엔 상황이 달라졌다. 유럽 젊은 식문화의 유행을 한식이 새로 주도하는 모습이다. 한국 문화가 갈수록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커지자, 낯선 외국 음식이었던 한식이 유럽 골목 골목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지난 2월 찾은 영국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 앞에 있는 ‘더 아이비 아시아’ 레스토랑. 유명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하루 600명~750명 가량의 손님이 찾는 고급 식당이다. 본래 일식 위주 음식을 팔던 이곳은 작년 말부터 한국식 ‘만두’ 메뉴를 내놓고 있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로 만든 메뉴다. 이곳 메뉴 개발 책임 다니엘 셰프는 “최근 런던에서 한식이 워낙 인기여서 잡채 만두 같은 다양한 한국식 만두를 먹어보고 한식 메뉴를 추가했다”며 “조만간 고추장 바비큐 같은 한식 소스를 적용한 새 메뉴도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메뉴판도 ‘한글’…‘비비고 만두’ 적용한 메뉴도

프랑스 파리 '오마 퀴진'의 장조림 덮밥. 집밥 같은 퓨전 한식을 내놓는다. /OMACUISINE 인스타그램

프랑스 파리 9구에 있는 ‘오마 퀴진(Oma Cuisine)’. 이곳 메뉴판은 모두 한글이다. ‘조개’ ‘육회’ ‘광어’라고 적는 식이다. 건축가 출신 박지혜씨가 장조림을 찢어 얹은 덮밥, 문어숙회에 래디시(붉은 무)를 얇게 저며 얹은 샐러드 같은 것을 내놓는다. 우리 입맛인데 또 유럽 스타일이다. 박씨는 “한식 세계화라는 재미없는 말은 됐고, 그냥 맛있는 한식”이라고 말했다.

유럽 구석구석 한식 레스토랑이 번지자 국내 식품 업체도 유럽 진출 채널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해외 진출 초기 한인 마트 중심으로 진출하던 국내 식품 업체들이 코스트코 같은 대형 유통업체뿐 아니라 현지 레스토랑에도 납품을 시작한 것이다. CJ제일제당은 지난 2020년부터 영국을 비롯한 유럽 일반 레스토랑에 B2B 납품을 시작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작년 유럽 레스토랑에 납품하는 B2B 채널 납품의 연평균 매출이 전년 대비 123% 상승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