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진경

소주와 맥주 시장에서 각각 1위 업체인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가 “당분간 가격 인상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제품 가격 인상을 저울질하던 주류 업계가 사실상 가격 동결을 선언했다. 소주·맥주 공장 출고가가 수십원 오르면 식당·주점 판매 가격이 1000~2000원씩 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실제 본지가 주류 가격 출고가와 대형마트, 일반식당·주점 판매 가격 인상 추이를 비교해봤더니 지난 7년간 주류 업체의 출고가는 15%(150원) 오르는 동안 식당 판매가는 최대 두 배 이상 뛴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들의 체감 물가가 내려가기 위해서는 식당과 주점 등에서 출고가 수준에 맞는 ‘적정 가격’을 받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음식 값보다 높게 뛰는 술값

국내 소주 시장 점유율 1·2위 브랜드인 참이슬(하이트진로)과 처음처럼(롯데칠성음료)의 360mL 출고가가 병당 1000원을 넘은 것은 2016년쯤부터다. 2015년 11월 참이슬이 출고가를 5.62% 인상하면서 1015.7원, 이듬해 1월 처음처럼이 6.4% 올려 1006.5원이 됐다. 2016년부터 올해 3월까지 소주 출고가는 참이슬과 처음처럼이 각각 14.8%, 15.5% 올랐다. 현재 출고가는 1166.6원과 1162.7원으로, 지난 6년간 참이슬은 150.9원, 처음처럼은 156.2원 인상된 셈이다. 같은 기간 카스 500mL 병 제품 출고가는 1147원에서 1260원으로 9.8%(113원) 올랐다. 대형 마트에서 판매되는 소주도 17.4%(190원) 인상됐다.

하지만 식당과 주점 등의 판매가는 최대 150% 뛰었다. 2016년 식당에서 3000~4000원에 팔리던 소주·맥주가 지금은 보통 5000~6000원이 됐다. 소주·맥주 한 병에 1만원 받는 곳도 점점 늘고 있다. 서울 여의도의 한 삼겹살 가게는 맥주 한 병에 6000~7000원을 받고, 서울 대치동의 참치집과 압구정동의 이자카야는 일반 소주를 1만원씩 받는다. 몇 년 새 소비자들의 주류 체감 물가가 급격하게 뛴 이유이다.

식당 음식 값 인상과 비교해도 술값은 가파르게 올랐다. 수도권에 여러 매장을 운영 중인 한 고깃집 체인점의 삼겹살 가격은 2016년 1만3000원에서 지금은 1만6000~1만9000원으로 23~46% 올랐다. 평양냉면은 33%, 설렁탕은 10%, 떡볶이는 50% 올랐다.

◇”상인들이 적정 가격 유지 노력해야”

상인들은 “인건비와 임차료, 재료비 같은 비용이 대거 인상됐다”며 “이를 모두 음식 가격에 얹을 수 없으니 술값에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식당의 주력 메뉴 가격이 비싸지면 손님 자체가 줄 수 있으니 술값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탓에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요청에 어쩔 수 없이 술값 동결을 결정한 주류 업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소비자 체감 물가가 상승한 건 주류 출고가가 아닌 식당·주점 판매가가 올랐기 때문이고, 정부가 4월부터 맥주 주세(酒稅)를 올리면서 가격 동결을 요구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주류 업계에서는 “일반 식당과 주점에서 주류 판매 가격을 출고가의 3배 안팎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판매가는 원가의 3배 수준이 적절하다는 요식업계의 관행에 따라 소주 출고가가 800원 수준이던 2000년대 중·후반엔 식당들이 보통 2000~3000원에 소주를 팔았고, 출고가가 1000원 수준이던 2010년대에 3000~4000원을 받았다. 이를 감안하면 출고가가 1200원 내외인 지금, 인건비·임차료 같은 운영비 상승을 감안하더라도 4000~5000원 수준이 적정 가격이라는 것이다. 한 마케팅 전문가는 “이미 집에서 술을 먹는 홈술 트렌드가 퍼진 상태에서 식당 주류 가격이 비합리적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면, 외식 음주 수요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