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명품 업체 샤넬이 최근 ‘녹색 부채(負債)’ 논란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2년 전 샤넬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 10%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수백만유로를 추가로 더 내겠다’는 조건으로 6억유로(8200억원) 규모 ‘ESG 채권’을 발행했다. 하지만 당시 샤넬이 이미 그같은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를 달성한 상태였음이 회사 내부 문서를 통해 최근 드러났다. 현지 언론들은 “샤넬이 이미 목표를 달성한 사실을 숨기고 친환경 명분으로 채권을 발행해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했다”고 비판했다.

샤넬은 이같은 비판에 대해 “탄소 직접 배출 뿐 아니라 간접 배출까지 감안한 성과를 투명하게 하기 위해 데이터를 계속 보완하고 있다”면서 “해당 채권은 ‘과학 기반 감축 목표 이니셔티브’로부터 승인을 받았고, 당사의 관련 데이터는 제3자 감사 및 게시가 이뤄지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외신들은 이같은 샤넬의 행태를 두고 ‘그린 허싱(green hushing)’이라고도 꼬집었다. 말 그대로 환경 문제에 대해 아예 침묵한다는 뜻으로, 과거에 친환경으로 홍보했던 내용을 슬그머니 감추거나 더는 관련 정책을 발표하지 않고 입을 다무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친환경 사업 철학이나 제품 개발을 홍보하지만 내실은 그렇지 않은 일부 기업들의 행태를 일컫는 ‘그린 워싱(green washing·녹색 거짓말)’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경우가 늘어나자, 녹색 침묵을 택하는 것이다.

◇'녹색 거짓말’ 들키자 ‘녹색 침묵’ 하는 기업들

스웨덴 패스트 패션 회사 H&M은 최근 미국과 유럽, 아시아 대다수 매장에 걸어 놓았던 ‘친환경 의류(Conscious)’를 철수하거나 진열 규모를 줄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H&M은 자사가 내놓는 이 친환경 의류 라인이 다른 옷을 만들 때보다 물을 20%가량 적게 소비하고 화학 섬유를 덜 쓰는 제품이라고 적극 홍보해왔다. 하지만 지난 8월 미국 소비자들이 “친환경 라벨이 붙은 이 제품들이 알고 보니 전혀 친환경 제품이 아니었다”면서 뉴욕 남부 지방 법원에 집단 소송을 제기하자 H&M은 이후 해당 제품 라인을 매장에서 빼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패스트패션 회사 쉐인(Shein)도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5%까지 줄이겠다”고 밝혔다가 “값싼 의류를 무료 배송 쿠폰을 뿌려 전 세계에서 무분별하게 소비하게 만든 회사의 목표치치고는 너무 낮은 수치”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역시 침묵 모드로 돌아섰다.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소셜미디어에는 “쉐인이 ‘그린 워싱’에 실패하니 ‘그린 허싱’으로 옮겨갔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기업은 ‘말 바꾸기’

코카콜라도 최근 ‘그린 허싱’ 사례로 거론된다. 코카콜라는 오는 18일까지 이집트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의 대표 후원사였다. 하지만 이를 두고 소셜미디어에는 “코카콜라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플라스틱을 배출하는 기업으로서 후원사를 맡는다는 것 자체가 ‘그린 워싱’”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후원사에서 코카콜라 퇴출을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에는 16일(현지 시각)까지 28만명이 서명했다. 비판의 근거는 코로나 이후 포장 배달 음식의 증가로 인해 코카콜라가 더 많이 소비되면서 플라스틱 소비가 더 급증했다는 것이다. 코카콜라는 이에 대해 “우리 제품의 99.9%는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구체적인 플라스틱 사용 감축 방안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소극적인 말 바꾸기로 ‘그린 허싱’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기업도 있다. 구찌·생로랑 등을 운영하는 케링 그룹의 프랑수아 앙리 피노 회장은 최근 ‘내재적인 럭셔리’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유행에 덜 민감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어서 과도한 소비를 조장하지 않는 명품이라는 뜻이다. 이에 일부 환경단체는 “매년 더 많은 실적을 내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광고 마케팅을 하는 명품 회사가 단어 몇 개만 바꿔 눈 가리고 아웅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린 허싱

친환경을 뜻하는 ‘그린(green)’과 ‘침묵하다’ ‘쉿!’이라는 뜻의 ‘허시(hush)’를 합쳐 만든 신조어. 기업이 친환경 정책이나 논란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관련된 구체적인 정책을 더는 내놓지 않는 행태를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