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분해 비닐 봉투를 생산하는 경기도의 A업체는 지난 9월부터 일감이 끊겼다. 2019년 5억원에 들여놓은 4대의 생분해 봉투 제작 기계는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환경부가 다음 달 24일부터 편의점, 빵집, 식자재 마트 등에서 친환경 인증을 받은 생분해성 플라스틱(PLA) 재질 봉투까지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 대표는 “정부가 생분해 수지 비닐 봉투는 친환경이라며 환경표지 인증까지 해줘놓고 손바닥 뒤집듯 정책을 바꾸는 바람에 직원 17명이 거리에 나앉을 판”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생분해 봉투 퇴출 결정으로 이 제품들을 만들어오던 중소기업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정부는 2007년부터 PLA 같은 생분해 소재에 대한 폐기물부담금을 면제해주고, 환경표지 인증 같은 인센티브를 주며 보급을 장려해왔다. 그러다 2018년 일회용품 금지 조치가 강화되면서, 기업들은 PLA를 포함한 생분해 플라스틱 생산에 대거 뛰어들었다. 하지만 작년 11월 환경부는 PLA 생분해 봉투를 퇴출하겠다고 발표하고, 올해 1월부터는 환경 표지 인증도 중단했다. 생분해 봉투 제조 업체들은 “환경부가 인증까지 해주고 생산을 장려해 기술과 설비에 투자를 했는데 갑자기 퇴출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발한다.

가동이 중단된 경남 지역의 한 생분해 비닐 봉투 공장. 월 2억5000만원 매출을 올리던 이 공장은 정부의 생분해 비닐 봉투 퇴출 정책 이후 주문이 뚝 끊겼다. /업체 제공

◇ 생분해 업체들 “장려하더니 1년 만에 퇴출이라니” 내달 24일 퇴출… 기업들 ‘고사 위기’

40년간 비닐 봉투를 만들어 온 경남 지역 B업체는 이달 주문을 단 한 건도 받지 못했다. 일반 플라스틱 비닐 봉투를 만들던 이 업체는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맞춰 2017년부터 생분해 봉투를 생산해 농협 하나로마트, 식자재마트 등에 납품해왔다. 사장 이모(50)씨는 “정부 기조에 맞춰 기술 개발을 통해 생분해성 봉투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간담회 한 번 없이 퇴출을 발표했다”며 “베트남 등지로 공장을 이전할 여유가 없는 영세 업체들은 문을 닫는 사례가 이미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봉투뿐이 아니다. 생분해 수지 빨대를 제조하는 파주 C업체의 처지도 비슷하다. 이 업체는 2018년 일회용품 규제가 시행되자 1년간의 개발을 거쳐 생분해 빨대를 내놓고 국내외에서 생분해 인증을 획득했다. 특급 호텔에도 납품해왔다. 업체 사장 김모(40)씨는 “전담 연구원 2명을 두고, 8000만~1억원짜리 기계 2~3개에 10t에 달하는 비싼 원료를 써가며 개발했는데, 거래 업체들에선 ‘이제 이 빨대 못 쓰는 거냐’는 연락이 온다”고 말했다.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국내 생분해수지 인증을 받은 기업은 총 225곳이다. 이번 생분해 비닐 봉투와 빨대 금지 정책으로 이들 대부분이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2025년까지 연간 7만5000t 규모의 PLA 공정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LG화학과 PLA 소재를 개발 중인 SK케미칼, 롯데케미칼 등 대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생분해 소재와 제품을 만드는 업체들은 현재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보완책 등을 요구하고 있다.

◇분리배출 시스템 여부가 관건

PLA 생분해 플라스틱을 장려하던 환경부가 퇴출로 급선회한 것은 이를 분리수거하는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PLA 소재는 상온 58℃ 조건에서 6개월 동안 90% 분해되는 조건으로 인증받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들을 분리수거하는 시스템도, 분해를 촉진하는 처리장도 없는 상황이라 사실상 일반 플라스틱과 다를 게 없지 않느냐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이에 대해 PLA 생분해 봉투를 만드는 업체들은 “상온인 20~28℃에서 1년 내에 90% 이상 생분해되는 기술도 이미 개발돼 있다”며 정책 시행만 유예해주면 강화된 기준에 맞춘 친환경 제품도 생산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업체들은 급박한 처지인데,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 없이 엇박자만 연출하고 있다. 환경부가 생분해 PLA 소재 퇴출에 나선 가운데 지난달 20일 한덕수 총리가 주재한 ‘탈플라스틱 대책회의’에서는 생분해 플라스틱 인증을 세분화하고, 사업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업체들은 “해외 사례를 참조해 생분해 플라스틱을 분리 배출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정부가 일관된 정책을 펼쳐 친환경 플라스틱 산업을 선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PLA(Poly Lactic Acid)

옥수수 추출 포도당을 원료로 만드는 생분해성 플라스틱. 일정 조건(현재 기준은 상온 58℃에서 6개월)이 충족되면 땅이나 바닷속에서 90% 이상 분해되고, 그 과정에서 환경호르몬과 중금속 같은 유해물질이 배출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