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스위트홈, 사내맞선, 패션왕...인기 웹툰은 영상물로 이어집니다. 웹툰의 왕국 일본을 넘어 전세계적 현상이 됐습니다. 문제는 웹툰이 영혼은 물론 관절과 척추를 갈아넣는 작업이라는 겁니다. 이 웹툰 세계에 ‘노동의 혁신’을 가져온 사람이 있습니다. 카펜스트리트 이민홍(31) 대표입니다.

이 대표는 건축가, 인테리어 전문가 등의 외장하드에 잠자고 있는 3D 모델 소스, 3D 디자인을 웹툰 작가들에게 연결해주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설립 3년이 채 되지 않아 외부 투자만 100억원 넘게 받았습니다. 확 와닿지 않으시죠? 조선일보 사장의 맛이 이민홍 대표를 만나 자세히 들었습니다.

카펜스트리트 이민홍 대표가 서울 대치동의 한 공유 오피스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 대표가 가리킨 3D 모델은 웹툰 등에서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박상훈 기자

◇‘엄친아’의 창업

이민홍 대표는 한국과학영재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건축학과를 다녔습니다. 이른바 ‘엄친아’입니다.

-3D 배경화면을 파는 회사, 이런 회사가 있는지 몰랐어요.

“건축 전공 대학생, 현직 건축가들은 늘 엄청 피곤한 얼굴로 다녀요. 밤 새는 일이 많거든요. 공모전에 응모하는 경우도 많죠. 그런데 거기서 떨어진 수많은 3D 디자인은 외장하드에서 잠을 자게 되요. 전 그게 늘 비효율적이란 생각을 했어요. 국내에서만 아마 연간 10만건의 프로젝트가 빛을 못 보고 외장하드에 쌓일 겁니다.”

-건축주, 심사위원 눈에 들지 않은 디자인을 모아서 아울렛 같은 걸 만든거군요.

“건축가들의 노력이 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재밌는 바람을 불러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서 카펜스트리트를 창업하게 됐죠”

-건축가 대신 건축가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사업가가 된 거네요?

“제가 고등학교 때 물리학, 프로그래밍을 전공했어요. 대학에선 건축 디자인을 전공했고요. 건축가가 되고 싶다,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 두 가지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첫 직장도 인테리어 플랫폼 회사에 들어갔고요.”

졸업한 그의 선택은 인테리어 플랫폼 회사 ‘오늘의 집’이었습니다. 오늘의 집은 현재 기업가치 약 2조원으로 평가받는 유니콘 기업입니다. 이 대표가 입사할 당시 직원은 20명 정도였답니다. 이 대표는 오늘의 집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2년 여 근무합니다.

-첫 직장으로 건축회사 대신 오늘의 집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우리가 사는 공간을 고민하는 게 건축의 매력이죠. 건축은 학문 자체는 매력적인데, 사용자 반응을 얻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어요. 오늘의 집에서 기획 업무를 맡았는데, 개발자와 소통해서 앱이 나오는 과정이 건설사와 건축가가 소통해가며 건물짓는 과정과 비슷하더라고요. 즐겁게 다녔습니다.”

에이콘3D에서 판매되는 카페 관련 디자인이 여러 웹툰에 활용된 모습. /카펜스트리트

◇위스키바에서 시작된 카펜스트리트

오늘의 집을 다니던 이민홍 대표는 2019년 초 퇴사를 합니다. 그리곤 카펜스트리트를 창업합니다.

-창업할 때 확신이 들던가요?

“퇴사 전에 실험을 해봤어요. 제가 아는 건축가의 3D 디자인을 웹툰 지망생에게 줘 본 거죠. 당시 3D 디자인은 카페를 설계했던 거였는데, 웹툰 지망생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사실 한 땀 한 땀 배경을 그렸으면 한 컷당 적어도 4~5시간 걸릴 일인데 3D 디자인으로 수고를 덜어 너무 좋다는 거예요. 내버려졌던 디자인이 웹툰 에서 살아나는 걸 본 건축가도 정말 좋아했어요. 그 모습을 보고 확신이 생겼죠.”

-초기 투자 비용은 얼마나 됐나요?

“오늘의 집 다니면서 모은 2000만원이 전부였어요. 사무실을 얻을 생각을 할 수 없었죠. 친한 동생이 서울 낙성대에서 위스키바를 했는데, 낮에만 빌려 사무실로 쓰며 홈페이지 구축하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업 구조가 여전히 확 와닿지가 않아요.

“저희는 기본적으로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여러 3D 디자인 분야의 창작자와 웹툰, 게임, 메타버스 분야 등에 있는 창작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이에요. 웹툰 작가 등이 저희 플랫폼에 업로드된 3D 디자인 소스를 구매한 후 다운로드해서 자기 작품 창작하는 데 활용하면 되는 거예요. 웹툰 작가 입장에선 아끼는 시간 동안 연출이나 스토리 고민을 더 할 수 있게 되는 이점이 있죠. 저희는 판매자와 계약한 수수료를 얻게 되는 구조고요.”

-처음에 창작자를 어떻게 모았나요?

“한 분 한 분 직접 만나서 설득했어요. 건축 전공 학생들, 건축가들 만나서 ‘저를 믿고 3D 디자인을 맡겨주시면 판매되는 경험을 돌려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죠. 어차피 외장하드에 잠자고 있는 디자인이고, 이게 우리 생각처럼 팔리지 않더라도 타격이 없다고도 말씀드렸죠. 그렇게 3주 동안 창작자들한테 3D 디자인 10건 정도를 받아서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바로 성과가 나온던가요?

“월 매출 30만원 찍었을 때 팀원들이 다 기뻐하면서 박수치고 그랬어요. 창작자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수요자한테 알리는 게 필요했어요. 처음에는 무작정 웹툰 작가들한테 인스타그램, 트위터 통해서 ‘저희 플랫폼 한 번 써보지 않으시겠어요?’라는 메시지를 보냈어요. 그러다 운 좋게 한 웹툰 작가님이 웹툰 작가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너무 좋다는 반응을 올려주셔서 수요가 급증하게 됐습니다.”

카펜스트리트의 에이콘3D를 쓰는 웹툰 작가는 물론 공급자도 크게 늘었습니다. 공급자는 현재 500명을 넘겼고, 유료 거래 건수는 2019년 7000건에서 지난해에는 9만8000건을 기록했습니다. 이 대표는 올해 유료 거래 건수가 30만건에 달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인기 있는 웹툰 작가들도 고객인가요?

“개인 정보라 저희가 구체적으로 밝히긴 어려운데요. 현재 굵직한 웹툰 플랫폼의 대부분 작품에서 저희 콘텐츠를 활용하고 있다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이제는 글로벌로 간다

카펜스트리트는 창업 5개월 만에 억대 투자를 받습니다. 네이버 계열 벤처캐피털(VC) 스프링캠프로부터 3억원, 이어 2020년 SBI인베스트먼트, 마이다스동아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15억원, 지난 2월에는 KB인베스트먼트, IMM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100억원의 투자를 받았습니다.

-흑자가 나고 있나요?

“흑자가 날 수 있는 구조지만 의도적으로 미루고 확장을 하고 있습니다. 북미, 일본, 중국, 프랑스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려고 합니다.”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은가보죠?

“운 좋게 해외에서 우리 플랫폼의 3D 디자인을 쓰면 좋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이제는 저희가 직접 나가려고 해요. 이미 외국어 홈페이지가 있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각 나라에 익숙한 3D 디자인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이를테면 학교 디자인의 경우에 한국 학교, 미국 학교의 모습이 다르잖아요? 그런 콘텐츠를 많이 확보하고, 각 나라에서 우리 홈페이지에 접속했을 때 더 맞는 디자인을 보여줄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해외 시장 확장을 위해 공격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반응이 좋은 결정적인 이유는 뭘까요?

“3D 디자인은 언어의 차이를 넘어섭니다. 뉴욕 건축가의 3D 디자인을 우리나라 작가가 쓸 수도 있고, 우리나라 건축가의 3D 디자인을 프랑스 게임 창작자가 쓸 수도 있는 거죠. 또 다른 사업분야와 달리 물류 창고가 필요하지 않잖아요. 바로바로 해외 수출이 가능한 구조죠. 이미 구매 경력이 있는 국가 수가 140여국에 달합니다. 입소문이 좋게 난 덕도 큽니다.”

-웹툰만으로는 확장에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요.

“저희가 웹툰 쪽 3D 디자인 플랫폼으로는 세계 최초입니다. 웹툰은 시작이고요, 게임 제작자, 심지어 건축가들도 구매를 하고 있어요. 비중으로 따지면 아직은 절반 이상이 웹툰이지만, 범위가 게임, 영화,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등으로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잘 팔리는 3D 디자인

-어떤 디자인이 잘 팔리나요?

“웹툰을 많이 본 분들이라면 잘 아실텐데, 웹툰의 배경은 우리 주변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카페, 학교 등이 주로 등장하는 장소죠. 도심 빌딩이 주제인 3D 디자인도 잘 팔리고요. 이런 배경을 웹툰 작가들이 그리려면 엄청난 시간을 써야 하는데, 저희 플랫폼에서 3D 디자인을 내려받으면 작업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거죠. 저희 플랫폼을 통해 작가들의 작업 시간이 80~90% 줄어든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 거죠?

“3D 디자인은 말 그대로 3차원으로 도면을 설계한 거예요. 평면인 2D와 달리 시점이나 구도를 바꿔가면서 마음에 드는 부분을 잘라서 활용할 수 있어요. 일종의 세트장을 대여해서 웹툰을 제작한다고 보면 됩니다.

-디자인 콘텐츠를 공급하는 작가들은 어느 정도 돈을 버나요?

“월 방문자가 20만명 정도 됩니다. 판매가 평균이 5만원 정도예요. 잘 버는 창작자는 한 달에 1000만원씩 가지고 가요. 처음에는 건축가나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부업으로 생각하다가 요즘에는 에이콘3D를 전업의 장으로 보기 시작했어요. 이전까지 실제 건축이나 가구 관련 디자인을 공급하던 분이 웹툰, 게임에 걸맞은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 거죠.”

어떤 디자인이 실제로 잘 팔리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이 대표에게 에이콘3D에서 가장 팔리는 3D 디자인 톱5를 파일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아래 그래픽이 바로 에이콘3D 판매 톱5 디자인입니다. 이 대표는 “3D 디자인이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장면뿐 아니라 건물 내외부에 있는 공간과 개별 가구, 인테리어 소품을 각각 떼어내 자기 작품에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에이콘3D에서 판매되는 상위 5개 작품 중 하나. 구도와 시점을 달리해서 활용할 수 있다./카펜스트리트
에이콘3D에서 판매되는 상위 5개 작품 중 하나. 구도와 시점을 달리해서 활용할 수 있다./카펜스트리트
에이콘3D에서 판매되는 상위 5개 작품 중 하나. 구도와 시점을 달리해서 활용할 수 있다./카펜스트리트
에이콘3D에서 판매되는 상위 5개 작품 중 하나. 구도와 시점을 달리해서 활용할 수 있다./카펜스트리트
에이콘3D에서 판매되는 상위 5개 작품 중 하나. 구도와 시점을 달리해서 활용할 수 있다./카펜스트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