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국내 사회적 기업 ‘동구밭’이 만든 고체 비누, 잘게 자른 고체 비누를 알루미늄 케이스에 담은 록시땅 제품, 설거지와 채소·과일 세척에 사용하는 국내 중소기업 커퍼솝의 고체 비누. /동구밭·커퍼솝·록시땅코리아

직원의 50%가 발달장애인인 사회적 기업 ‘동구밭’은 친환경 고체 수제 비누 회사다. 세안용뿐 아니라 샴푸·린스, 설거지 세제까지 고체 비누로 만드는데, 2017년 7억원이던 매출이 작년 60억원을 찍더니 올해 100억원을 넘길 전망이다. 고체 비누 인기에 매출이 매년 거의 두 배씩 성장하고 있다.

딱딱한 비누가 돌아왔다. 몇 년 전만 해도 액체 비누의 빈자리를 겨냥한 틈새시장을 형성하는 정도였다면, 최근엔 고체 비누가 대세가 되는 분위기다. 비누 한 조각이면 액체 비누 4통가량을 대체할 수 있고, 포장재도 간단해서 플라스틱을 따로 버리지 않아도 된다. 특히 코로나 이후 공중 화장실의 공용 세제를 쓰기 꺼리는 이들이 휴대용 비누칩을 갖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20~30대를 중심으로 고체 비누 열풍이 불고 있다.

화장품·생활용품 회사들도 고체 비누 신제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신세계가 고체 비누 신제품을 잇따라 출시했고, 아로마티카·비건글로우·한아조·커퍼솝 같은 국내 중소 업체도 고체 비누 인기와 함께 매출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더 팔린다… 대세가 된 딱딱한 비누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는 지난달 모발용 비누 ‘그린티 프레시 샴푸바’를 출시했다. 린스를 따로 쓰지 않아도 머리칼이 엉기지 않고 촉촉하도록 만들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조만간 탈모 전용 브랜드 라보에이치를 통해서도 고체 비누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생활용품 브랜드 ‘자주(JAJU)’도 최근 동구밭에서 제품을 공급받아 고체 비누 신제품 6종을 내놓았다. 판매 한 달 만에 미리 확보해뒀던 5개월치 물량이 전부 팔렸다.

고체 비누에 열광하는 주소비자는 20~30대다. ‘자주(JAJU)’ 관계자는 “비누를 구입한 소비자의 80%가 20~30대”라며 “비누를 감싸는 포장재가 간단해 쓰레기가 적고 비누 자체가 물에 녹으면 분해돼 친환경적이라는 점에서 젊은 층에 특히 인기”라고 말했다. 330mL의 샴푸 용기를 하나 만드는 데 보통 플라스틱 28g이 드는데, 비누를 쓰면 그만큼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휴대성이 좋은 것도 또 다른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몇몇 업체가 비누를 잘게 잘라 만든 ‘비누칩’ 제품을 내놓으면서, 액체 비누보다 비누칩을 꺼내 쓰는 것이 더 간편하다는 소문이 퍼졌다. 프랑스 화장품 업체 록시땅이 알루미늄 틴 케이스에 비누를 잘게 잘라내 담아낸 ‘포켓 솝’은 지난 8월 국내 출시 직후 수입 물량 전량이 품절됐다. 국내 중소 업체가 만든 비누칩도 제품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다.

◇설거지 세제도 치약도 ‘고체’ 바람

설거지용 세제도 고체 비누가 액체 세제를 대체하는 추세다. 온라인 쇼핑몰 롯데온에 따르면 올해 8~11월 설거지용 고체 비누 판매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26%가 늘었다. 치약도 알약 형태의 고체 제품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매년 10억개씩의 플라스틱 치약 튜브가 폐기물로 버려진다는 조사 결과가 알려지면서 고체 치약을 쓰려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드마케츠에 따르면 전 세계 고체 치약 판매는 2019년 300억원에서 2030년 1069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고체 비누 열풍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 전자상거래 사이트 엣시의 이달 초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 6개월 동안 ‘천연 비누’를 검색한 횟수는 4만4000건이 넘었다. 2017년 같은 시기보다 검색량이 110% 증가했다. 환경오염이 심각한 중국에서도 고체 비누 판매는 20~30대를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중국 고체 비누 판매는 62억3000만위안(1조1578억원)가량으로 전년보다 3.8%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