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식품 배송 업체 마켓컬리는 작년 매출이 전년보다 123.5% 폭증한 9523억원을 기록했다. 2015년 국내 최초로 시작한 새벽배송 서비스가 코로나 시대를 만나 폭발적인 성장을 한 덕분이다. 마켓컬리는 창업 7년 만에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쿠팡도 100여개에 이르는 온라인 물류센터를 바탕으로 새벽배송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네이버에 이어 국내 온라인 유통 시장 2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 3월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면서 한국 오프라인 유통 업체를 전부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시가총액을 기록했다.

쿠팡과 마켓컬리가 새벽배송 시장을 발판으로 삼아 성장 가도를 질주하는 사이 국내 대형 마트 3사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는 이 시장에서 역차별받으며 약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로 도입 10년째를 맞은 유통산업발전법이 이들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새벽 배송 발목 잡은 영업시간 규제

2012년 정부는 대형 마트에 대해 ‘월 2회 휴무’와 ‘자정부터 오전 8시까지 영업 금지’를 핵심으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을 도입했다. 전통 시장 상권을 살리고 대형 마트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이었다. 정부는 2013년 영업시간 제한을 오전 10시까지로 확대, 규제 강도를 더욱 높였다.

대형 마트 규제가 강화된 지 2년 만인 2015년 마켓컬리가 ‘샛별배송’이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새벽배송을 도입했다. 서울 강남에서 시작한 새벽배송은 소비자들의 호응 속에 서울 전역으로 확산됐다. 로켓 배송(당일 배송)으로 급성장 중이던 쿠팡도 2018년 이 시장에 뛰어들어 마켓컬리를 따라잡고 이 시장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대형 마트 3사인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는 새벽배송 시장의 급성장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창고형 할인 마트, 대형 마트, 수퍼마켓마다 냉장고와 창고를 갖추고 있어 언제든 새벽배송을 할 수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새벽엔 영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형 마트들은 오프라인 매장을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2019년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를 만드는 방식으로 뒤늦게 새벽배송에 뛰어들었지만 역부족이다.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각각 물류센터 3곳을 갖추며 온라인 시장에 참전했지만 전국에 물류 창고 100여개를 보유한 쿠팡과 경쟁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물류센터를 갖추지 못한 홈플러스는 새벽배송이 아예 불가능하다. 창고형 할인 마트, 일반 마트, 기업형수퍼마켓을 합쳐 이마트는 399개, 홈플러스는 474개, 롯데마트는 419개나 되지만 이들은 모두 영업시간 제한 대상으로 묶여 역차별받는 상황이다. 김태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전략팀장은 “국민들은 생필품과 식재료의 주된 구입처로 대형 마트를 선호한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점포의 영업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소비자의 선택권과 편익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0년째 맞는 규제에 쇠락하는 대형 마트

10년째 지속되고 있는 월 2회의 영업 규제도 전통 시장을 살리겠단 취지는 전혀 살리지 못했다. 한국유통학회가 대형 마트 이용 경험이 있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의무 휴업일에 전통 시장을 이용한다는 소비자는 5.8%에 불과했다. 반면 온라인 쇼핑, 식자재 마트, 복합 쇼핑몰 등을 이용한다는 이는 50.8%에 달했다.

이 규제는 결과적으로 전통 시장과 대형 마트가 함께 몰락하는 결과만 불렀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가 신용카드 사용자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의무 휴업 규제 도입 5년째인 2016년 진행한 이 조사에서 대형 마트에서의 소비 금액은 전년 대비 6.4% 줄고 전통 시장에서도 3.3%의 하락세를 보였다.

대형 마트의 영업 침체는 곧바로 일자리 감소로 이어졌다. 롯데마트는 최근 3년간 누적 영업적자가 660억원에 이르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해 점포 12곳을 폐점하고 올 초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홈플러스도 지난해 점포 4개를 매각했으며 올해도 대구스타디움점의 문을 닫기로 했다. 전통 시장을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규제로 인해 마트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 일자리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올해 4월 매출만 살펴봐도 대형 마트의 매출은 전년 대비 2.8%, 기업형수퍼마켓이 11.7%나 하락했다. 한 대형 마트 관계자는 “지금 같은 규제 환경에서는 쿠팡이나 마켓컬리 같은 기업과 경쟁이 안 된다”며 “최소한 영업시간 규제라도 풀어줘야 대형 마트들의 폐점 도미노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