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추가 의견 없어요?’ '넵' ‘네넵’ ‘넵..’ ‘넵!’ ‘네엡’

대기업 사원 윤정현(31)씨의 회사 팀 메신저방 대화는 매일 '넵'으로 시작해 '넵'으로 끝난다. 최근 일주일간 대화 내용을 분석했더니 팀장을 제외한 직원 5명이 '넵'을 하루 평균 178회 사용했다. 윤씨는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시작한 뒤로 모든 대화를 메신저로만 하다 보니 원래 앓던 ‘넵병(病)’이 더 심해지고 있다”며 “이젠 ‘넵무새(넵+앵무새)’를 넘어서 ‘넵봇(넵+로봇)’이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최근 재택근무로 메신저로만 소통하는 직장인이 늘면서 ‘급여체(회사에서 급여를 받는 직장인들이 쓰는 용어)’도 진화하고 있다. 단어 하나, 문장부호 하나로 뜻이 달라져 급여체 해석을 놓고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대기업 대리 이동원(32)씨는 “보고를 했는데 부장님이 ‘이응(ㅇ)’ 하나만 달랑 보내면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서 전전긍긍하게 된다”며 “사무실에선 부장님 표정이라도 확인할 수 있지만 재택근무를 하니 그마저 안 돼 답답하다”고 했다.

◇기본 급여체 '넵' 활용법

직장인이 가장 많이 쓰는 급여체는 단연 '넵'이다. 상사의 지시에 답할 때 그냥 '네'라고 하기엔 어딘지 건조하고 딱딱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넹' '넴'을 쓰자니 너무 가벼워 보인다. 그래서 선택하는 게 바로 '넵'이다. 공공 기관 대리 정모(29)씨는 “적당히 절도 있고 경쾌하면서 확실한 인상을 주는 것 같아서 '넵'을 애용한다”고 했다.

여기에 문장부호를 더해 상황이나 기분을 표현하기도 한다. 의욕이나 적극성을 강조하고 싶을 땐 느낌표를 써서 ‘넵!’이라고 하거나, 두 번 반복해 ‘넵넵’이라고 한다. 무리한 일을 요구하는 경우엔 말줄임표를 이용한 ‘넵..’으로 은근히 하기 싫다는 뉘앙스를 준다. 정씨는 “점의 개수는 부담과 비례한다고 보면 된다”며 “대놓고 하기 싫다고는 못 하고 그냥 수긍하기엔 억울해서 소심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앗'이나 '아'를 붙이면 더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 스타트업 사원 김광영(31)씨는 “지금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려고 ‘앗! 넵’을 많이 쓴다”며 “실수했을 경우에도 최대한 빨리 바로잡는 중이라는 느낌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매일 ‘넵 폭탄’을 받는 상사의 생각은 어떨까. 증권사 부장 이모(40)씨는 “'넵'이라고 대답해 알아들은 줄 알았더니 아닌 경우가 허다했다”며 “기계처럼 넵만 반복하지 말고 필요할 땐 의사를 좀 더 확실하게 표현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갑(甲)'의 급여체 ‘ㅇ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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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의 보고에 답하는 상사들의 급여체도 있다. 기본형은 영어 ‘오케이(Okay)’. 이 역시 상황과 감정에 따라 여러 형태로 바뀐다. 기분이 좋으면 상사도 느낌표를 쓴다. 대기업 부장 김모(42)씨는 “대화 창을 보니 보고 내용이 흡족할 때 느낌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케이!’ 또는 ‘ㅇㅋ!’를 주로 쓴다”고 했다.

보고 내용이 평이하지만 크게 문제도 없을 때는 주로 ‘ㅇㅋ’ 또는 ‘ㅇㅇ’을 많이 쓴다고 한다. 반면 보고 시한을 넘겨서 보고한 경우, 보고 내용이 엉망진창이지만 바빠서 지적할 겨를이 없는 경우엔 'ㅇ' 하나만 쓰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큰 의미 없이 귀찮아서 한 번만 치는 경우도 있다. 중소기업 대표 신정호(47)씨는 “별다른 뜻 없이 확인했다는 의미로 'ㅇ'을 계속 썼는데 나중에 한 직원한테 ‘너무 서운하다’는 말을 들어 놀랐다”고 했다.

반대로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태어난 세대) 신입 사원과 메신저 대화를 하다 당황하는 상사도 많다. 중소기업 부장 이모(43)씨는 신입 사원에게 ‘거래처랑 대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고 물었다가 거래처 직원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를 캡처한 사진이 연속 세 장 날아와 멍해졌다고 했다. 이씨는 “앞뒤 상황 설명 없이 바로 사진을 보냈길래 ‘이게 다냐’고 물었더니 '넵'이라고 답해 할 말을 잃었다”고 했다. Z세대인 대기업 신입 사원 조아라(26)씨에게 캡처를 보내는 이유를 물어봤다.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대화 전체를 보여주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귀찮아서가 아니라 오해를 줄이자는 거죠.”


◇'급여체' 대신 ‘이모티콘’ 어때요

급여체에 익숙하지 않은 Z세대 신입 사원들은 이모티콘을 제2의 언어처럼 사용한다. '넵'이나 ‘ㅇㅋ’ 같은 급여체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이모티콘부터 대사가 적힌 이모티콘까지 활용해 이모티콘만으로도 대화를 이어나가기도 한다. 업무 협업 툴 ‘잔디’를 서비스하는 토스랩의 김대현 대표는 “텍스트로만 하면 상황과 느낌이 잘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이모티콘을 활용하면 상사든 부하든 더 원활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다"며 "요즘 잔디에선 ‘승인’ ‘확인했습니다’ 등 상사가 쓸 수 있는 이모티콘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업무용 메신저인 ‘슬랙(Slack)’은 코로나 사태 이후 내놓은 ‘원격 작업 가이드’에서 ‘이모지(Emoji·그림 문자)’ 활용을 적극 권장했다. 슬랙은 메시지마다 반응하는 이모지를 붙일 수 있는데, 이를 ‘리액션(Reaction·반응)’과 ‘이모지’를 합쳐 ‘리액지(Reacji)’라고 부른다. 메시지마다 팀원이 전부 대답하면 알림이 너무 많이 울려 업무를 방해할 수 있으니 리액지를 대신 활용하자는 것이다. 슬랙은 “리액지를 잘 활용하면 업무에 지장을 덜 주면서도 메시지보다 더 많은 뜻을 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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