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형 부동산 개발사인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이 장쑤성 전장에 건설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촬영한 사진. /연합뉴스

중국 최대 민간 부동산 개발 업체였던 헝다(恒大)그룹에 이어 대형 업체인 비구이위안(碧桂園)과 완다(萬達)의 ‘도미노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로 중국 경제가 거품 붕괴와 함께 일본식 장기 침체에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 등 외신들은 14일부터 비구이위안의 11개 위안화 채권 약 56억위안(약 1조원)어치의 거래가 중단된다고 전했다. 채권시장의 패닉(공포)을 진정시키기 위한 긴급 조치다. 올 초 80~90센트였던 비구이위안 채권값은 지난 11일 8센트 아래로 10분의 1 토막 난 상태다. 거래 재개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헝다와 함께 중국 신규 주택 판매 1위를 다투던 비구이위안은 지난 6일 만기가 된 액면가 10억달러 채권에 대한 이자(2250만달러)를 갚지 못하는 유동성(자금) 위기에 빠졌다. 비구이위안은 일단 30일간 이자 지급 유예를 적용받았다. 그 이후에도 못 갚으면 디폴트가 선언된다.

그래픽=이철원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면 미·중 갈등과 디플레이션(지속적 물가 하락)으로 침체된 중국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중국 경제의 부동산 비중은 한국·일본(약 20%)보다 높다.

누적된 부채가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자산 가치 붕괴와 경제 위기로 분출하는 ‘민스키 모멘트’가 닥칠 수도 있다. 부동산 업체에 돈을 빌려준 은행의 부실채권이 늘어나 은행 건전성도 훼손된다.

다급해진 중국은 13일 외국인 투자 촉진을 위해 외자기업에 ‘중국 국민과 동등한 대우’를 보장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하지만 꺼져가는 경기의 불씨를 되살릴지는 미지수라는 평가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올해 중국 상황이 1980년대 부동산 거품이 터진 후의 일본 상황과 비슷하다는 주장이 있다”며 “기업·가계가 모두 빚 갚기에만 몰두하느라 경제 성장이 하향 곡선을 그리는 일본식 ‘대차대조표 불황’의 발판이 마련됐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의 경제적 취약성을 ‘째깍거리는 시한폭탄’에 비유한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하며 “지난 10년간 세계 경제 성장의 40%를 담당해온 중국 경제의 침체는 세계 경제에 우려스러운 위험요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 침체로 중국 경제 결정타 맞나

비구이위안의 전체 빚은 1조4300억위안(약 263조원) 규모다. 2021년 디폴트를 선언한 헝다그룹의 부채는 2조위안(약 368조원)이었다. 두 회사 부채만 합쳐도 올해 우리나라 예산(638조원)에 맞먹는다.

헝다에서 시작된 도미도 디폴트 공포는 지난달 완다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다롄완다상업관리집단 디폴트 위기로 재점화됐고, 비구이위안까지 휘청이며 현실이 됐다. 비구이위안이 중국에서 벌인 건설 프로젝트는 3000여 건으로 헝다(약 700건)의 4배 이상이다. 블룸버그는 “(비구이위안의) 어떠한 디폴트도 헝다 때보다 중국 주택시장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고 전했다.

지난 11일 중국 대형 민간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이 베이징에 짓고 있는 주거용 건물 건설 현장. 한 인부가 공사 중인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다. 중국 주요 부동산 업체들의 자금난이 심각한 가운데 비구이위안은 지난 6일 만기가 돌아온 채권 이자를 갚지 못해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를 맞았다. /로이터 뉴스1

지난달 공시를 통해 최근 2년간 146조원 적자를 냈다고 밝힌 헝다는 중국 당국의 ‘3도 홍선(red line)’ 규제에 걸려 자금난이 심화됐다. 3도 홍선이란 선수금을 제외한 부채비율 70% 이상, 순부채비율 100% 이상, 단기부채가 자본금을 초과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 중 하나라도 걸리면 신규 대출이 막히고 기존 대출은 회수된다.

완다그룹은 지난달 말 계열사 지분을 급처분해서 4억달러를 마련해 만기가 돌아온 채권을 상환했지만, 연말까지 홍콩 증시에 상장하지 못하면 300억위안(약 5조5000억원)을 투자자들에게 되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중국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른 실적 악화로 상장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헝다와 완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적(政敵)을 후원했기 때문에 자금난을 겪게 됐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헝다 창업주 쉬자인은 시 주석이 속한 태자당과 대립해온 공청단·상하이방과 가까이 지냈고, 완다그룹 완젠린 회장은 태자당 내 시 주석의 경쟁자인 보시라이를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이 ‘투기 억제’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정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이들을 손봤다는 시각이 많다.

◇부동산 의존했던 지방정부 재정난 심각

중국 부동산 시장의 부채 위기는 6400조원이 넘는 지방 정부의 재정 건전성과 직결된다. 부동산 부실이 지방 정부의 재정 악화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는 뜻이다.

토지가 국가 소유인 중국에서는 부동산 개발 업체가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지방 정부로부터 토지사용권을 사서 아파트를 짓는다. 아파트 신규 분양이 줄면 토지사용권이 팔리지 않아 지방 정부 재정 수입이 급감하는 구조다.

그래픽=이철원

실제로 2021년 지방 정부 재정 수입의 40% 정도는 토지사용권 매각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작년 토지사용권 매각 수입은 4조7000억위안(약 864조원)으로 전년보다 31% 줄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올해도 10~15% 감소할 것으로 봤다.” 작년 말 지방 정부의 채무 잔액은 총 35조위안(약 6436조원)으로 전년보다 15% 늘었다.

부동산 업체가 디폴트에 빠지면 부실채권이 늘어나 은행 등 금융회사들의 건전성도 훼손될 수 있다. 국제금융센터 이치훈 신흥경제부장은 “중국 부동산이 더블딥(이중 침체)에 빠졌고 회복세는 보기 힘들 것”이라며 “중국 회사채 담보의 60%를 차지하는 부동산이 부실해지면 채권 시장도 흔들릴 것”이라고 했다. 골드만삭스는 고위험(하이일드) 달러 채권의 28% 정도가 디폴트 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미 지난달 중국 소비자물가는 2년 5개월 만에 작년보다 뒷걸음질(-0.3%)치며 사실상 디플레이션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수출은 전년보다 14.5% 줄어 2020년 2월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고, 중국 정부의 올해 ‘5% 안팎 성장’ 목표도 달성이 불투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