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실리콘 웨이퍼/조선일보DB

일본 반도체 소재 기업들이 일제히 가격 인상에 나섰다. 수조원대 설비 투자 이후 투자 비용을 제품 가격에 전가하는 것이다. 반도체 전쟁에선 한국과 대만에 밀린 일본이지만, 소재와 부품 분야에선 여전히 세계 최강자다. 일본발 소재 가격 인상이 반도체 생산 원가를 자극, 다시 반도체 가격 인상을 부추길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비용 상승 압력이 스마트폰이나 가전, 전기차와 같은 최종 생산품에도 미칠 것으로 보인다.

9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반도체 제조 필수 재료인 실리콘 웨이퍼를 만드는 섬코(SUMCO)가 가격을 30% 인상한다고 보도했다. 실리콘 웨이퍼는 직경 300㎜짜리 원판이다. 삼성전자와 같은 반도체 제조사는 원판에다 회로를 그린 뒤, 잘라서 최종 반도체 상품을 만든다. 섬코는 올해 계약분부터 인상분을 적용, 2024년까지 계약을 갱신하면서 가격 30% 인상을 관철할 계획이다. 2021년의 전 세계 실리콘 웨이퍼 출하 면적은 전년보다 14% 증가해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섬코는 3500억엔(약 3조2920억원)을 투입, 일본과 대만에 공장을 신설할 계획이다. 실리콘 웨이퍼 강자인 신에쓰화학공업도 가격을 인상할 움직임이다. 1000억엔이 넘는 설비 투자에 나선 만큼, 가격 인상을 통해 투자분 회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생산에 사용하는 가스를 생산하는 쇼와덴코도 20%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쇼와덴코는 웨이퍼에 회로를 그리거나 깨끗이 씻을 때 쓰는 가스를 만드는 소재 기업이다. 원재료인 가스 가격 인상과 운송 비용의 증가분을 구매자인 반도체 회사에 떠넘긴 것이다. 스미토모백라이트는 작년부터 반도체 관련 일부 소재의 가격을 20% 정도 올렸다. 신에쓰폴리머도 웨이퍼 운반 용기 가격을 인상했다.

당장 반도체 설계도를 위탁받아 대신 제조해 납품하는 파운드리의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최대 업체인 대만 TSMC는 내년 초까지 단계적으로 위탁 제조 가격을 인상할 방침이다. 미국 글로벌파운드리는 올해 판매 단가를 10% 인상할 방침이다. 자동차, 스마트폰, PC 등 반도체를 많이 쓰는 제품의 제조 원가가 비싸지는 만큼 가격 인상 도미노 가능성이 크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전자 부품 가운데 반도체 비율은 39%(2021년 금액 기준)다. 스마트폰은 30%, PC는 37%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