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準) 기축통화의 하나로 대표적인 안전 자산으로 꼽히던 엔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24일(현지 시각)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은 122.4엔까지 올랐다(엔화 가치 하락). 122엔대까지 오른 것은 2015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23일 원·엔 환율이 3년 만에 장중 100엔당 1000원 밑으로 떨어졌다.

지난 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와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뉴스1

엔저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은 올 들어 달러 강세 흐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이번 달에 3년 3개월 만에 금리 인상을 시작하면서 향후 인상 속도와 폭이 커질 것이라는 예고를 한 상태인데, 일본은행은 경기 부양을 위해 저금리 기조의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라 엔화 값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있지만 장기 저성장 상황인 일본은 지난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9%에 그쳤다. 따라서 일본은행은 국채를 계속 매입해 10년물 국채 금리를 0% 정도로 유도하려는 완화적인 통화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유나 원자재를 구입하는 데 쓰이는 달러 수요만 늘고 있고 상대적으로 엔화는 소외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외국인들이 더 이상 엔화를 안전자산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위기감을 표시하고 있다. 엔저가 두드러질 때마다 수출 실적이 늘어날 거라는 기대가 커져 일본 기업들의 주가가 오르곤 했는데, 올해는 그런 현상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지평 한국외국어대 특임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고 달러 수요가 늘면서 연초 일본 기업에서 배당을 받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본에 재투자하지 않고 달러로 바꿔 빠져나가고 있어 엔저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