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헝다 그룹이 베이징에 세운 아파트 단지 앞으로 주민이 걸어가고 있다. 헝다 그룹의 유동성 위험이 커지자 3일 광둥성 정부는 쉬자인 헝다 회장을 긴급 소환한 뒤 정부 실무단을 헝다에 파견키로 했다./ 연합뉴스

중국 최대 민영 부동산 개발 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몰리자 중국 정부가 개입했다.

3일 차이롄서(財聯社) 등 중국 언론들에 따르면 헝다는 이날 홍콩증권거래소 공시에서 “2억6000만달러(약 3075억원)의 채무를 상환하라는 통보를 받았으나 이를 상환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만약 채무 이행에 실패할 경우 일부 채권단들의 채무 상환 요구가 가속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외 채권단과 채무 조정 계획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사실상 역외 부채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정한 셈이다. 헝다가 한 차례의 달러 채권 원리금을 제대로 갚지 못할 경우, 192억3600만달러(약 22조7000억원)에 달하는 전체 달러 채권의 연쇄 디폴트로 이어질 수 있다.

헝다의 유동성(자금) 위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중국 광둥성 정부는 이날 밤 쉬자인(許家印) 헝다 회장을 긴급 소환했다. 소환은 정부 기관이 감독 대상 업체나 기관을 공개적으로 불러 질타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웨탄’(約談) 형식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광둥성 정부는 헝다의 요청에 따라 실무팀을 헝다에 파견해 리스크(위험) 관리 및 내부 통제 강화를 통해 정상적인 회사 운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국 금융 당국은 헝다가 설사 공식 디폴트를 내더라도 중국 경제 시스템에는 문제가 없다는 메시지를 잇따라 내놨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심야에 발표한 성명에서 “헝다 위기의 주요 원인은 스스로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맹목적인 확장을 추구한 데서 비롯됐다”며 “국제 달러채 시장에서 투자자들은 비교적 성숙하고 관련 문제를 처리할 명확한 법적 규정과 절차도 존재한다. 단기적인 부동산 기업의 위험이 중장기적으로 시장의 정상적 융자 기능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고 밝혔다. 은행감독관리위원회도 “헝다의 전체 채무 중 금융권 부채가 3분의 1 정도에 그치고 구조적으로도 분산돼 있다”면서 “금융권의 정상적 운영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증권감독관리위원회도 별도 성명에서 “중국 본토 주식 시장이 안정을 유지하고 있고 채권 시장에서의 디폴트 비율 역시 1% 안팎의 비교적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헝다 위기가 자본시장에 끼칠 영향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헝다의 달러채 가격은 달러 당 20센트로 폭락해 디폴트 위험을 반영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헝다가 채무불이행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며 신용 등급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린 상태다.

헝다는 2조위안(약 371조원) 이상의 부채를 안고 있으며, 작년부터 정부의 부동산 억제 정책으로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 10월부터 헝다는 세 차례나 유예 기간 만료 직전에 달러 채권 이자를 갚으며 디폴트를 모면했다.

하지만 이달 6일까지 총 8249만달러(약 976억원)의 달러 채권 이자를 갚지 못하면 공식 디폴트를 내게 된다. 헝다 계열사인 징청(景程·Scenery Journey)은 당초 채권 이자 지급일인 지난달 6일까지 2건의 채권 이자를 지급하지 못했는데 30일의 유예 기간이 이달 6일 끝난다. 헝다는 올해 추가로 4건의 달러화 채권 이자를 막아야 하고, 내년까지 상환해야 할 달러화·위안화 채권 규모는 74억달러(약 8조7500억원)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