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가 만든 비옥한 땅 위에 ‘코로나 백신, 미 대선 종료, 재닛 옐런 재무장관 내정’이라는 강력한 비료가 더해지니 증시가 풍년일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가 걷잡을 수 없이 오르자 시장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쉽게 말해 “주가가 오를 만한 이유는 널렸고, 반대로 주가가 떨어질 만한 이유는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코로나 확산세가 여전하고, 올해 벼랑 끝으로 몰렸던 에너지·항공·여행 관련 업종들의 실적 전망도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투자자들은 넘쳐나는 돈의 힘을 등에 업고 가파른 경기 회복에 통 크게 ‘베팅’하고 있다. 하지만 실물경제가 본궤도에 올라오지 않는 상황에서 풀린 돈과 기대감만으로 ‘상승 랠리’를 이어가기는 어렵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월가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는 피터 터크만이 24일(현지 시각) 뉴욕증권거래소 앞에서 다우 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3만 포인트를 돌파한 것을 기념한 모자를 쓰고 환하게 웃고 있다. 터크만은 1985년부터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주식 매매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 트레이더로 활동 중인데, 아인슈타인을 닮은 외모로 유명하다. 이날 다우지수는 전날 대비 1.5% 급등한 3만46.24로 장을 마쳤다. /UPI 연합뉴스

◇돈의 힘에 ‘미 대선 종료, 코로나 백신 호재’ 더해져

지난 23일 한국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처음 2600선을 돌파하자마자, 글로벌 증시를 이끄는 미국 뉴욕에서도 ‘낭보’가 날아들었다. ‘다우지수’가 124년 역사상 최초로 3만 선 고지를 밟은 것이다. 다우지수는 24일(현지 시각) 1.54% 오른 3만46.24에 마감하며, 2017년 1월 2만 선을 넘은지 4년도 안 돼 3만 선을 돌파했다. 다우지수는 1896년 출범 후 1만 선을 뚫는 데 103년(1999년 3월)이 걸렸고, 이후 1만 선에서 2만 선 돌파까지는 18년이 걸렸다. 이날 S&P 500 지수도 1.62% 상승한 3635.41에 마감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달 들어 각국 증시는 너나 할 것 없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다우지수가 13.4%, 범유럽 지수인 유로스톡스가 18.6% 오른 것을 비롯해 일본 닛케이와 한국 코스피 지수도 14% 넘게 상승했다. 코스피 지수는 25일 상승세로 출발했다가 오후 1시 넘어 하락세로 전환하면서 0.62% 내린 2601.54에 거래를 마쳤다.

올해 초 코로나 사태로 폭락했던 글로벌 증시가 언제 그랬냐는 듯 강세를 이어가는 배경에는 ‘저금리’가 있다. 워낙 금리가 낮아 채권 같은 안전자산에 투자해서는 돈 벌기가 어려워지자 막대한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주식과 채권 투자 비율을 6대4로 가져가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고 전했다.

게다가 이달 들어 호재가 쏟아지고 있다. 미 대선이 끝나고 예상보다 빠르게 조 바이든 당선인 체제가 구축된 데다 코로나 백신 개발이 막바지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시장 친화적인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이 바이든 행정부의 재무장관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증시는 원·달러 환율 하락세까지 더해지면서 외국인들이 15거래일 연속 코스피 순매수를 기록하고 있다.

◇“장밋빛 전망 속 비관론도 적지 않아”

25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월가 애널리스트 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응답자들은 내년 말까지 다우와 S&P 500 지수가 평균 9~10% 더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내년 말까지 20% 가까이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증시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현재 주가 수준은 미래의 경기 회복을 과도하게 선(先)반영한 상태이고, 지수 상승을 이끈 대형 기술주들의 주가가 더 크게 오르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백신 개발 기대감으로 최근 항공주 주가가 많이 올랐지만, 24일 국제항공운송협회가 “올해와 내년 세계 항공업계의 손실 규모가 1570억달러(약 174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경기 회복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월가의 억만장자 투자가 레온 쿠퍼맨은 CNBC와 인터뷰에서 “장기적으로 월가 전망과 반대되는 의견을 갖고 있다”며 “파티가 끝나면 누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