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

지난해 우리나라는 세계 73국에 휘발유·경유 같은 석유제품을 수출했다. 2013년(49국)보다 수출국이 50% 가까이 늘었다. 2020년 석유제품 최다국(72) 수출 기록도 경신했다. 과거 아시아에 집중됐던 수출 상대는 유럽은 물론 물류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아프리카·중남미·태평양 섬나라 등으로 확장하고 있다. ‘비(非)산유국’ 대한민국이 원유를 수입·정제해 최고 품질의 휘발유·경유·항공유를 만들어 전 세계 3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국가에 수출하는 것이다. 품질·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수출선 다변화에 성공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유사 고위 관계자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아 전량 수입에 의존해 오면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잘 쓰려다 보니 기술과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게 됐다”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유럽, 아프리카까지… “못 파는 곳 없다”

지난해 GS칼텍스는 유럽 남서쪽 이베리아반도 끝에 있는 영국령 지브롤터에 항공유 47만6000배럴(1배럴은 158.9리터), 금액으로 5690만달러(약 770억원)어치를 수출했다. 지브롤터에 한국산 석유제품을 수출한 건 지난해가 처음이다. 중남미 국가 코스타리카에도 에쓰오일이 지난해 처음으로 수출선을 뚫어 경유 31만4000배럴을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27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석유제품 수출량은 총 4억9367만배럴, 수출 상대국은 73국에 달했다. 수출국 숫자도 늘었지만, 분포도 다양화됐다. 2013년만 해도 전체 수출 상대 49국 가운데 절반이 넘는 25국이 아시아(중동 제외)에 몰려 있었지만, 지난해에는 아시아가 24국으로 줄어든 반면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등이 크게 늘었다. 2013년 각각 5국에 그쳤던 유럽과 중동은 17국과 10국으로 늘었고, 아프리카도 4국에서 10국으로 확대됐다. 같은 기간 미주도 10국에서 12국으로 늘었다.

품목도 휘발유, 경유는 물론 항공유, 윤활유 등으로 확대됐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석유제품 수출은 세계 6위, 항공유 수출은 세계 1위다. 지난 10년간 국내 수출 품목 순위에서도 석유제품은 톱 6를 지키고 있다. GS칼텍스는 지난해 윤활기유(윤활유의 핵심 원료)를 리투아니아, 스웨덴, 폴란드에 수출하며 북유럽으로 시장을 확대했고, HD현대오일뱅크는 태평양의 피지, 유럽의 몰도바, 남미 가이아나에 윤활유 제품 수출을 이어가고 있다.

◇정제 시설 경쟁력으로 시장 다변화 성공

세계 톱 5 정제 시설 가운데 3곳이 국내 정유 공장일 정도로 강력한 생산 능력이 가격과 품질에서 해외 업체들을 압도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일앤드가스저널에 따르면, 국내 정유 3사인 SK에너지(울산), GS칼텍스(여수), 에쓰오일(울산)은 베네수엘라 PDVSA(파라구아나), 아랍에미리트(UAE) ADNOC(아부다비)와 함께 톱 5에 올라 있다.

2000년대 들어 설비 투자를 늘리며 생산 능력을 키워온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하루 244만배럴 수준에 그쳤던 국내 정유사의 정제 능력은 설비 투자가 이어지면서 2006년 280만배럴을 넘어섰고, 2018년부턴 320만배럴을 유지하고 있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실장은 “2000년대 초만 해도 2억~3억배럴이었던 연간 수출량은 2010년대 중반 이후엔 5억배럴 안팎으로 늘어났다”며 “정제 능력이 커지며 수출도 함께 늘었다”고 말했다.

최대 수출국이었던 중국으로의 수출이 최근 들어 줄어드는 상황에서 발 빠르게 수출국을 다변화하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2021년까지 6년 연속 1위 수출 상대였던 중국은 경기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에 자국 생산량 증가 영향까지 겹치며 지난해 6위로 떨어졌다. 호주가 새로운 수출 시장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세계 각국으로 수출을 확대한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김형건 강원대 교수는 “대중 수출이 급감했지만, 세계 각국으로 석유제품 시장을 늘리면서 전체 수출 규모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