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희귀 가스’ 국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네온(Ne), 제논(Xe), 크립톤(Kr) 등 고순도 희귀 가스는 그동안 국내 제조사가 없어 전량 수입에 의존했는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여파로 공급 차질을 빚으면서 반도체 분야에서 ‘제2의 요소수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포스코 사옥. /포스코홀딩스 제공

포스코홀딩스는 중국 가스 설비 전문 기업 ‘중타이 크라이어제닉 테크놀로지’와 75.1%, 24.9% 지분율로 합작사를 설립하고 2025년부터 희귀 가스 상업 생산에 나선다고 27일 밝혔다. 포스코는 이를 위해 내년부터 전남 광양에 희귀 가스 생산 공장을 짓는다. 광양 공장은 연산 13만Nm3(노멀 입방미터·섭씨 0도, 1기압에서 기체 부피 단위) 규모로, 국내 반도체 산업 수요량의 52%를 공급할 수 있다.

포스코는 희귀 가스 원재료인 ‘크루드 네온가스’를 작년 1월부터 상업 생산해 왔다. 포스코는 제철소에서 생산되는 크루드 가스를 합작법인 공장에 공급하고, 중타이는 크루드 가스에서 고순도 희귀 가스를 생산하기 위한 설비와 기술을 제공한다. 포스코 관계자는 “앞으로 광양 공장에서 희귀 가스를 생산하면 삼성전자가 품질 인증 절차를 거친 뒤 구매할 예정”이라며 “그동안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던 반도체용 고순도 희귀 가스를 국산화해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공기 중에 미량으로만 존재하는 희귀 가스는 다량의 공기를 처리할 수 있는 대형 공기분리장치가 있어야만 생산 가능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국내 기업들은 주로 미국, 중국, 우크라이나에서 희귀 가스를 수입해 왔다. 하지만 전쟁 탓으로 한때 우크라이나에서 생산이 중단되면서 작년 중국산 희귀 가스 가격이 10~20배 오르기도 했다.

이후 국산화 필요성이 커지면서 희귀 가스 시장에 진출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반도체 장비 기업 제이아이테크는 올해 3월 우크라이나 희귀 가스 제조사 크라이온과 합작사 ‘크라이온코리아’를 설립하고 생산 플랜트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1위 산업용 가스 기업 미국 린데도 올 초 경기 평택시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2031년까지 약 1500억원을 투자해 희귀 가스 생산 시설을 조성하기로 했다.